경기도 연천 출신. 조소앙(趙素昻)의 아들이다.
1932년 1월 중국 상해 프랑스조계 망지로(望志路)에서 이덕주(李德柱)·김덕근(金德根) 등 9인이 모여 상해한인청년당을 조직하고 서무부장에 선출되어 활동하였으며, 1933년 3월 상해한인소년동맹원으로 3·1운동기념과 그해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항일격문을 인쇄, 배포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0년 12월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가입하여 항일사상을 고취하면서 활약하였다. 1941년 충칭[重慶] 임시정부의 황학수(黃學秀)·이준식(李俊植)·노복선(盧福善) 등과 함께 군사특파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외교부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1943년 3월 한국독립당에 가입한 뒤 1945년 임시정부의 특명으로 만주로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중 연안파(延安派) 독립동맹계 김창만(金昌滿)에게 안동(安東)에서 암살당하였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