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조 상주지역의 향촌사회를 영도했던 정경세(鄭經世)·이준(李埈)·성람(成灠) 등이 1623년(인조 1)에 사설의료기관으로 건립하였다.
율리의 넓은 들판이 보이는 얕은 언덕 기슭에 자리잡았는데,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1칸반으로 중앙 2칸이 우물마루를 깐 대청이고, 대청 좌우에는 1칸씩의 온돌방을 두었다. 대청과 온돌방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고, 뒷벽에는 각 칸에 판벽(板壁)을 치고 쌍여닫이 널문을 달았으며, 후면에는 쪽마루를 시설하였다.
온돌방과 마루 사이에는 쌍여닫이 굽널 띠살문을 달았고, 방의 앞쪽은 하부에 머름중방[遠音中枋 : 머름 위에 가로로 낀 창틀] 위에 쌍여닫이 띠살창문을 내었으며, 배면에는 2자 정도 폭의 벽장을 설치하였다. 얕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다.
대청은 5량가인데, 크게 구부러진 대량을 사용하면서 한쪽에는 동자주(童子柱) 없이 종량을 그대로 얹었고, 종량 위에는 원형 판대공(板臺工)을 세워 상부가구를 결구시켰다.
수 차례의 중수와 중건으로 그 원형은 다소 변형되었으나, 상주지역의 사설의료기관으로서, 또 18세기말 이후에는 양로당·서당 등으로 다양한 쓰임새를 보인 공공적인 성격을 띠었던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