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05㎝, 너비 124㎝, 두께 24㎝. 우리나라 최대의 대첩비로, 1615년(광해군 7)에 건립되었다. 이 비문에는 이순신의 활약상이 적혀 있어 해남·노량·고금도·통영·아산 등에 세워졌던 충무공전공비(忠武公戰功碑)와 함께 애국충절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
대리석제 비신은 화강암제의 귀부(龜趺) 위에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연화문과 운룡문이 새겨진 화강암제의 관석이 개석으로 얹혀져 있다. 비문은 1615년에 당대의 명사 이항복(李恒福)이 지었다. 글씨는 명필 김현성(金玄成)이 썼으며, 비신 상단의 ‘統制李公水軍大捷碑(통제이공수군대첩비)’라는 두전(頭篆)은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한편, 같은 장소에는 1698년(숙종 24) 남구만(南九萬)이 지은 형지기(形止記: 조사한 상황이나 전말을 기록한 책)가 있다. 그 기문(記文)에는 이순신의 막료로 활약하였던 수군통제사 유형(柳珩)과 좌수영 지역의 유지 및 후손들의 노력으로 1620년에서야 비로서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를 건립하게 되었으며, 이 때 여수 타루비(보물, 1998년 지정)도 대첩비 옆으로 옮겨 세우고 비각(碑閣)을 세워 보존하였다는 비 건립 전후의 전말이 밝혀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