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빗에는 나무 · 우각 · 상아로 만든 살이 성근 얼레빗과 대로 만든 빗살이 촘촘한 참빗[竹梳]의 두 종류가 있다. 이 가운데 참빗은 예전에 머리를 단장할 때 단정함과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참빗은 재료와 형태 · 크기 · 빗살의 조밀한 정도에 따라 그 종류가 모두 9가지로, 음양소(陰陽梳) · 대소(大梳) · 중소(中梳) · 퇴침소(어중소) · 진양소 · 화각소 · 민갑소 · 밀소 · 써울치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 경공장으로는 공조에 죽소장 2인이 있어 수요를 충당하였고 외공장으로는 전라도에 죽소장 1인이 있었다.
참빗은 재료가 대나무로 예로부터 대가 나는 영 · 호남 지역 특산품으로 많은 농가에서 부업으로 제조하였으나, 개화기 이후 두발 간소화와 퍼머의 유행으로 점차 소멸되어 현재는 오직 전라남도 영암과 담양에서 관광 상품으로만 만들고 있다.
참빗은 세밀한 공정이 필요하므로 공구도 다양하고 숫자도 많다. 톱과 자귀 · 대패 외에도 새톱, 자작칼, 대때린칼, 백칼, 다리, 조름, 전짐, 장석대, 등밀칼, 밀칼, 중빌칼, 한만, 한대, 얼대, 가래칼, 숫돌 등이 있다. 대를 베는 과정에서 완성까지 대략 35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현재 참빗장으로는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 318의 고행주(高行柱, 1935년 6월 18일생)와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550의 이식우(李植雨, 1936년 3월 6일생)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담양의 고행주는 증조부 고찬여(高贊汝)로부터 전해 온 참빗 가업을 장남 광연(光綠)과 차남 광채(光蔡)까지 5대째 계승하고 있다. 고행주는 9살부터 참빗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하여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장인이다.
이식우의 출생지인 영암 망호리는 경주이씨 집성촌으로 300여 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참빗일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참빗장 이식우의 가계는 8대조 이정량(李廷亮)으로부터 부친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참빗을 업으로 삼아 왔다. 이식우는 10세부터 조부 이규기(李圭琦)와 부친 이종일(李鍾日)로부터 기술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