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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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초장 / 이상재
완초장 / 이상재
공예
개념
왕골로 기물을 만드는 일 및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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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왕골로 기물을 만드는 일 및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
내용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왕골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로서 용수초(龍鬚草)·현완(懸莞)·석룡추(石龍芻)라고도 한다. 왕골제품에는 자리·돗자리·방석·송동이·삼합(三合) 등이 있다. 제작방법은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과 손으로 엮는 방법이 있다.

도구에는 노경소직(露經疎織 : 날줄이 보이며 성글게 짜임)의 자리틀과 은경밀직(隱經密織 : 날줄이 보이지 않고 촘촘히 짜임)의 돗틀이 있다. 노경소직의 대표적인 제품은 강화(江華)의 화문석(花紋席)이며, 은경밀직의 대표적인 것은 전라남도 보성(寶城)의 용문석(龍紋席)이다.

두 가지 도구 모두가 위사(緯絲)는 왕골을, 경사(經絲)는 삼이나 청얼치, 어저귀를 사용했으나 요즈음은 경사에 면실을 사용한다. 손으로 엮는 방법은 왕골 4날을 방석엮음하여 8날을 만들고, 두 개의 씨줄로 엮는다. 씨줄은 노꼬락지에 왕골을 걸어 꼬아 만든 왕골 노를 사용하며, 무늬는 물들인 왕골과 마령풀(백색)을 사용한다.

제품으로는 화방석(4각·8각·원형의 방석)과 삼합, 송동이·소품 등이 있으며 모두 강화에서 부업으로 만들어 내는 특산품이다. 강화군 지역경제과에서 조사한 1997년 1월 1일 현재 완초공예품 생산현황에 따르면, 화방석은 41호가 종사하여 1,042매를, 꽃삼합은 20호에서 693개를, 소품은 27호에서 1,461개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완초제품의 수요가 막대하였음에도 조선시대의 경공장(京工匠)이나 외공장(外工匠)에는 완초장은 두지 않았으며, 다만 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 석장(席匠)이 있어 완초석(왕골돗자리)을 비롯한 많은 수요의 초석(草席)들을 조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 기능보유자는 강화의 이상재(李相宰)로, 그의 기능은 왕골을 손으로 엮어 만드는 화방석·꽃삼합·소품이다. 강화 교동사람들은 예부터 왕골제품을 부업으로 삼아 생활해왔으므로 교동 출신인 이상재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왕골기능을 익히게 되었다.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 -완초장(莞草匠)-』(김성수·김삼대자, 문화재관리국, 1996)
『강화사(江華史)』(강화문화원, 1994)
『공장(工匠)』(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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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삼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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