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전라북도 민속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고봉산(高峰山)의 지맥(支脈)을 뒤로 한 경사지를 축대를 쌓아 바르게 조성하고 안채와 사랑채를 나란히 병좌임향(丙坐壬向)해 배치했으며 안채 뒤쪽에는 사당이 있다. 이곳은 지세가 오공혈(蜈蚣穴: 지네 굴)로서 명당이기 때문에 풍수적 형국(形局)에 따라 실생활에 불리하지만 북향으로 집을 배치하였다.
안채의 건축 년대는 1860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으로 60㎝정도 높이의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전면에는 두리기둥[圓柱]을,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사용하였다. 칸살은 남부지방 민가와 같이 왼쪽부터 부엌 · 안방 · 대청 · 건넌방 순으로 배열했고, 마루 또는 툇마루를 통해 방들을 연결하였다.
안방 뒤에는 칸을 막아 골방을 만들었는데 이곳을 통해 부엌 상부 다락에 오를 수 있다. 넓은 다락 공간은 이 집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대청 상부를 제외하고 부엌과 안방, 건넌방 상부 모두에 다락을 만들었다.
사랑채는 ㄷ자형의 건물로서 안채를 감싸듯 세워졌는데 중앙에 대문이 있고 우측 끝에는 누마루가 돌출해 있다. 방들의 구성과 각 방의 사용을 볼 때 대문 서쪽의 방들은 주로 안채에 딸린 공간이며, 동쪽의 방들이 실질적인 사랑채 공간이다. 누마루는 전면과 오른쪽에 머름대(모양을 내느라고 미닫이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랫중방에 내는 널대)를 놓고 분합문을 달았으나 한 면은 난간만 설치하고 그대로 개방하였다.
전면에 자연석과 소나무 등으로 조경을 해 운치가 있다. 특히 안마당에 내외 벽 대신 동백과 영산홍 등을 심은 차면(遮面) 화단은 계획적인 조경 수법을 볼 수 있다. 지금은 넓게 빈터로 남아 있는 사랑채 앞마당에는 바깥 사랑채를 비롯해 놀이청, 곳간채, 행랑채, 대문채 등 많은 부속 채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