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52.4㎝. 연화사에 소장되어 있는 2점의 석상 가운데 하나로서 옛 연기군 일대에서 발견된 일련의 불비상(佛碑像)과 동일한 양식 계열에 속한다. 외형은 배 모양이지만 측면은 위가 좁고 뒷면은 곡면(曲面)을 이루고 있다.
하단에 홑잎의 앙련(仰蓮: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을 둘러서 대석으로 삼았다. 조각은 앞면에 새겨진 칠존불을 중심으로 측면과 뒷면에 각각 1구의 여래좌상을 새겼다. 측면과 뒷면의 조각은 방위불(方位佛)로서의 개념보다는 앞면에 대한 부가적인 성격이 강하다. 납질편암(蠟質片岩)의 석질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한 편이다.
본존여래좌상은 신체에 비하여 과대하게 표현된 두부(頭部)와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맺고 있는 과장된 손 그리고 불신(佛身) 표현 등에서 삼국시대 조각 전통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불신은 양어깨를 감싼 두꺼운 통견(通肩) 대의로 인해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불신보다 얕게 부조된 네모반듯한 대좌는 상반부에 양식화된 물결형의 옷주름이 새겨진 상현좌(裳懸座: 불상의 옷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좌)이다. 하단에 일단의 각형 받침이 보인다. 대좌 전면에는 두툼한 연꽃 봉오리를 중심으로 좌우에서 줄기가 피어올라 협시보살상의 연대(蓮臺)를 이루고 있다.
본존불의 머리 광배는 내연의 주위에 널찍한 테두리가 둘러진 이중의 연화원광이다. 배 모양 거신광(擧身光)의 첨부에는 보주(寶珠)를 배치하여 장엄 효과를 더하였다. 본존불 좌우의 협시상들은 엄격한 좌우대칭적 배치법을 따르고 있지만 상의 자세는 비교적 자연스럽고 동적이다.
본존불과 보살상 사이에서 삐죽히 상체만을 내밀고 있는 승려상의 배치 방식과 보살상의 치마인 군(裙)에 보이는 촘촘한 수직 주름 그리고 갑옷의 세부 장식이 자세하게 묘사된 금강역사상의 표현 형식 등은 비암사(碑岩寺) 비상과 거의 동일하다. 특히 좌우 끝단의 사자는 비스듬히 정면을 향하여 조각되어 두리 새김 같은 조형성을 나타내고 있다.
전면의 상반부에는 화불(化佛) 3구가 남아 있다. 나머지 여백은 인동문(忍冬文)을 새겨 불꽃무늬의 효과를 내었다. 뒷면 하반부에는 거신광을 배경으로 1구의 불좌상을 새겼다. 왼손을 발목 부위에, 오른손을 무릎 위에 가만히 내린 손의 형태는 군위 삼존석불과 함께 통일신라 8세기 이후 크게 유행한 촉지인(觸地印) 좌상의 선구적인 형식이다.
삼국시대 조각의 보수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부분적으로 새로운 요소가 가미된 이 석상은, 통일신라 조각 양식 확립의 태동기인 7세기 후반의 이른바 전환기 양식의 단면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