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자기(子幾)·겸부(謙夫)·계위(係危), 호는 죽정(竹亭). 평장사 탁영(卓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직제학 탁문위(卓文位)이고, 아버지는 좌간의대부 탁광무(卓光茂)이며, 어머니는 판종부시사 박지연(朴之衍)의 딸이다.
1389년(공양왕 1)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으나 부모가 연로하여 고향에 돌아와 감지(甘旨)를 지내고, 아버지가 병사한 뒤 1398년(정종 즉위년) 효행으로 천거되어 우습유(右拾遺)가 되었다.
용담현령을 거쳐 1404년(태종 4) 사간원좌정언에 임명되었고, 누천(累遷)하여 장령에 승진되었다. 1408년 집의를 거쳐, 그 해 8월 언관으로서 태종의 사위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이 군사를 발병한 사건에 그의 죄를 청하는 소를 올렸는데, 이로 인하여 태종의 노여움을 사 1409년 나주에 장류(杖流)되었다.
곧 사면되어 1410년 전농시정(典農寺正)·사성에 임용되었다. 1411년 동부대언(同副代言)에 제수되고, 1415년 좌대언으로서 병사(兵事)에 관한 6개조의 비사책(備事策)을 올려 병권의 정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1416년 지신사(知申事)·경승부윤(敬承府尹)·이조참판을 거쳐, 1418년(세종 즉위년) 예조참판·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에 올랐다. 1419년 예문관제학을 지냈고, 1423년 의정부참찬에 올랐다. 경학(經學)에 밝았고, 무예·음률에도 능하였다. 성주의 오계사(梧溪祠)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