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4월,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부에 의해 '태화 여자관'이란 이름으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에 설립되었다. 1933년 ‘태화 사회관’, 1953년 ‘태화 기독교 사회관’을 거쳐 1980년에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이 되었다.
이완용(李完鎔)의 소유였던 조선시대 ‘순화궁(順和宮)’ 건물을 명월관(明月館)이 임대해서 음식점으로 운영하던 중 1919년 3월 민족 대표 독립 선언식이 그곳에서 거행되었다. 그 후 매물로 나온 것을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부가 사들여 수리한 후, 1921년 4월 1일부터 사업을 시작하였다.
1922년에 미감리회 여선교부, 북장로회 여선교부도 사역에 참여하여 초교파 연합 기관이 되었다. 여학교와 여자 성경 학원, 유치원, 진찰소 등을 설립하여 여성교육(女性敎育)과 계몽운동(啓蒙運動), 아동 보건, 공중위생 사업을 추진하였다.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사회사업 기관으로서 1922년 조선 여자 기독교 청년회(YWCA)와 1927년 근우회(勤友會)가 이곳에서 태동하였다.
1936년에 북장로회와 미감리회 여선교부가 사업에서 철수하였고 태화 여학교도 이숙종(李淑鍾)이 인수하여 성신여학교로 발전하였다. 1939년 11월, 3층 건물의 회관을 마련하였지만 1940년 11월, 선교사들이 추방당하고 태평양 전쟁(太平洋戰爭)이 발발하면서 ‘적산(敵産)’으로 처리되어 종로 경찰서가 건물을 차지하였다.
해방 후 1947년에 회관을 되찾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중단되었다. 1953년, 휴전 후 아동 복지와 문맹 퇴치, 빈민 구제, 청소년 계몽 사업을 재개했다.
1980년, 서울 유린 사회관과 인천 기독교 사회관, 대전 기독교 사회관, 공주 기독교 사회관, 부산 기독교 사회관 등과 연합으로 ‘사회 복지 법인 감리회 사회 복지관 재단’(현, 태화 복지 재단)을 설립하여 선교부로부터 회관과 재산을 인수하였다. 1982년, 정부의 인사동 지역 재개발 계획에 의해 12층 규모의 빌딩을 지은 후 재단법인(財團法人)의 수익 사업 용도로 활용되었다.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은 1995년, 강남구 수서동 741번지에 지하 3층, 지상 6층의 새 회관을 지어 어린이집과 여성 쉼터, 탁아소, 청소년 복지, 가정 폭력 상담, 정신 장애인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역대 관장으로 마이어즈와 에드워즈, 와그너, 빌링슬리, 올리버, 빌링스 등 여선교사들이 봉직(奉職)하였고, 1963년부터 한국인 관장 시대가 열려 문인숙, 김선심, 박미희, 남경현, 김경희, 김현숙, 심정식, 윤연주를 거쳐 2022년부터 이아진 관장이 봉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