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동지밀직 · 판후덕부사 등을 역임하고 『유항집』을 남긴 문신.
이칭
맹운(孟雲)
유항(柳巷)
시호
문경(文敬)
봉호
상당군(上黨君), 청성군(淸城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33년(충숙왕 복위 2)
사망 연도
1384년(우왕 10)
본관
청주(淸州)
주요 저서
유항집
주요 관직
동지밀직, 판후덕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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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한수는 고려 후기에 동지밀직, 판후덕부사 등을 역임하고 『유항집』을 남긴 문신이다. 공민왕 때에 오랫동안 문한직을 맡았으며 우왕대에 공신으로 책봉되고 상당군, 청성군에 봉해졌다. 문장과 글씨에 모두 능해 많은 서예 작품과 시문을 남겼으며, 이색·염흥방 등과 시문으로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정의
고려 후기, 동지밀직 · 판후덕부사 등을 역임하고 『유항집』을 남긴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청주(淸州). 자(字)는 맹운(孟雲)이고, 호는 유항(柳巷)이다. 할아버지는 중찬(中贊)에 올라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봉해진 한악(韓渥)이고, 아버지는 밀직(密直)을 거쳐 청성군(淸城君)에 봉해진 한공의(韓公義)이다. 어머니는 밀직사좌대언(密直司左代言)을 지낸 경사만(慶斯萬)의 딸이다. 한수는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적(權適)의 딸과 혼인하여 4남 6녀를 두었다. 아들은 한상환(韓尙桓)· 한상질(韓尙質)· 한상경(韓尙敬)· 한상덕(韓尙德) 등이다.

주요 활동

일찍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나, 1347년(충목왕 3) 이곡(李穀)이 주관한 과거에서 15세의 나이로 합격하였다.

충정왕(忠定王)정방(政房)필도치(必闍赤)에 임명되었으며, 충정왕이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도로 갈 때 시종하여 따라갔다.

공민왕(恭愍王)이 다시 발탁하여 필도치로 삼았으며, 여러 번 승진하여 1363년(공민왕 12)에는 밀직사좌대언(密直司左代言)에 이르러 인사행정을 맡았다. 이때까지 줄곧 지제고(知制誥), 한림대제(翰林待制) 등의 문한직(文翰職)을 겸임하였다.

1365년(공민왕 14) 신돈(辛旽)이 집권하자, 왕에게 신돈이 바른 사람이 아니라며 멀리할 것을 아뢰었다가 예의판서(禮儀判書)로 밀려난 다음 곧 관직에서 물러났다. 1371년(공민왕 20) 신돈이 숙청되자 왕이 다시 불러 이부상서(吏部尙書) 수문전학사(修文殿學士)로 발탁하였으며, 곧 승선(承宣)에 임명되어 다시 인사행정을 관장하였다.

우왕(禑王)대에 밀직제학(密直提學), 동지밀직(同知密直) 등을 지냈으나, 공민왕 시해에 관여한 한안(韓安)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일시 유배되었다. 1378년(우왕 4) 유배에서 풀려나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지고 공신호를 받았으며, 1380년(우왕 6)에는 청성군(淸城君)으로 새로 봉해졌다. 1383년(우왕 9)에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우문관대제학(右文館大提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에 52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한수는 시서(詩書)에 뛰어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색(李穡)· 염흥방(廉興邦) 등과 교분이 깊어 수많은 시를 주고받았다. 또한 예서(隷書)초서(草書)에 모두 능해 당대의 명필(名筆)로 이름났다. 「노국대장공주묘비(魯國大長公主墓碑)」, 「회암사지공대사탑비(檜巖寺指空大師塔碑)」 등과 현존하는 「여주 신륵사보제선사사리석종비(神勒寺普濟禪師舍利石鐘碑)」는 한수의 필적이다.

그의 사후 아들인 한상질이 모은 그의 유고(遺稿)를 바탕으로 문생(門生)인 성석용(成石瑢)이 『유항집(柳巷集)』이라는 문집을 간행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목은집(牧隱集)』 「한문경공묘지명(韓文敬公墓誌銘)」
『유항시집(柳巷詩集)』
『동문선(東文選)』

논문

김윤주, 「고려 우왕대 이색과 한수의 교유와 시(詩): 『목은시고』, 『유항시집』의 차운시를 중심으로」 (『사학연구』 126, 한국사학회, 2017)
도현철, 「고려말 염흥방의 정치활동과 사상의 변화」 (『동방학지』 141,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8)
박종기, 「이색의 당대사(當代史) 인식과 인간관: 묘지명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66, 한국역사연구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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