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4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98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왕궁저수지가 완공되어 그 둑과 수문 사이에 높이 50m 정도의 암대(巖臺)가 생기자 이곳 출신인 송병우(宋炳雨)가 사재를 들여 1930년에 저수지가 완성된 것을 기념하여 창건하였다.
가공한 화강석을 외벌쌓기하여 기단을 조성하고 초석를 놓았는데 평면 바깥열의 초석과 내부열의 초석 모양이 다르다. 외진(外陣)은 사각형의 초석받침 위에 둥근 초석이며, 내진(內陣)은 초석 받침 위에 각형의 초석을 사용하여 그다지 높지 않게 누(樓)를 구성하였다. 따라서 기둥도 외진기둥은 두리기둥이고, 내진기둥은 사각기둥이다.
사각기둥에는 사분합의 문비(門扉)를 시설한 흔적이 남아 있어 외진과 내진이 구분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내진부는 다시 1:2로 칸이 나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문비는 모두 없어졌다.
공포는 2익공의 형태로 평주 위에서도 쇠서[牛舌]가 정면과 좌우 45。 방향으로 석 줄 짜여 있어 이채롭다. 귀포[隅包 : 귓기둥 위에 짜놓은 공포]가 아닌 포작(包作 : 공포를 짜서 꾸미는 일)에서 대각선 방향의 쇠서[牛舌]가 짜여지는 사례는 중국 건축의 공포에서나 볼 수 있는 예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전체가 연화문 · 동물문 · 초화문 등으로 수려하게 단청되어 있었다. 지붕의 추녀 끝은 활주가 받치고 있으며, 지붕 측면 합각도 벽돌로 문양을 넣어 벽돌벽으로 꾸몄다. 2010년 단청수리 되었으며, 2013년 지붕 기와 교체 공사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