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군수 정구의 주관으로 군인(郡人) 이여선(李汝宣)·박제인(朴齊仁)·이정(李瀞)·오운(吳澐) 등이 편찬하였다. 현존하는 읍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뒤에 다른 읍지 편찬에 모범이 되었다.
함안읍지는 이 읍지가 편찬된 이후 한말까지 누차 속찬되어 각지에 이본(異本)인 인본(印本)과 사본(寫本)이 전하여지고 있다.
사림 출신의 수령과 향중 인사의 합작으로 편찬된 이 읍지는 치읍(治邑)에 참고하려는 의도와, 자기 고장의 문화를 정리하겠다는 재향 인사들의 목적이 합치되어 완성된 것으로, 그 편찬 체재는 ≪동국여지승람≫을 모방하였으나 항목 설정이 훨씬 상세하다.
내용 구성은 경사상거(京師相距)·사린강계(四隣疆界)·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형승(形勝)·풍속(風俗)·각리(各里)·호구(戶口)·전결(田結)·산천(山川)·토산(土産)·관우(館宇)·성곽(城廓)·단묘(壇廟)·학교(學校)·서원(書院)·역원(驛院)·군기(軍器)·봉수(烽燧)·제언(堤堰)·관개(灌漑)·정사(亭榭)·교량(橋梁)·불우(佛宇)·고적(古蹟)·임관(任官)·명환(明宦)·성씨(姓氏)·인물(人物)·선행(善行)·규행(閨行)·견행(見行)·문과(文科)·무과(武科)·사마(司馬)·총묘(塚墓)·정표(旌表)·책판(冊板)·제영(題詠)·총담(叢談) 등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는 정구의 서문이 있으며, 특히 여러 항목 중 각리·단묘·정사·임관·인물·총묘조가 가장 상세한 것은 하나의 시대적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권말에는 오운과 임흘(任屹)의 발문이 있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발간되지 못하다가 1603년(선조 36)에 오운에 의하여 재등사되었고, 영조 때 군수 이휘진(李彙晉)에 의하여 증집(增輯)되었다.
다시 100여 년 후인 헌종 때 군수 이덕희(李德熙)에 의하여 계수(繼修)되었는데, 전자를 제1권, 후자를 제2권으로 하였다. 2권의 내용 가운데, 1권에 없는 것으로 전부(田賦)·조적(糶糴)·진공(進貢)·봉름(俸廩)·군병(軍兵)·임수(林藪)·시장(市場)·목장(牧場) 등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없는 경사상거·각리·호구·전결·군기·제언·관개·임관·문과·무과·사마·정표·책판·총담 등의 항목이 첨가되었다. 이 항목들은 정치적인 면의 안민(安民)과 유교 도덕을 선양하는 선속(善俗)에 관계되는 것이다.
특히, 각리조는 사방 경계, 동서남북의 거리 및 이의 크기, 속방(屬坊)의 수와 명칭, 토지의 비척, 수한(水旱 : 장마와 가뭄)의 정도, 거민(居民)의 신분·풍속 등이 기재되어 있어, 조선 중기의 촌락 편성과 주민의 신분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호구조와 전결조도 각 리를 단위로 거민의 남녀 수와 전결 수가 기록되어 있어 지방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이 밖에도 ≪함주지≫ 이본 1책이 규장각도서에 있고, 고종 연간에 편찬된 ≪함안군읍지≫가 장서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