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남양부원군(南陽府院君) 홍규(洪奎)의 증손으로, 문하시중 홍언박(洪彦博)의 아들이며,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1354년(공민왕 3) 좌부대언(左副代言)에 제수되고, 1358년 병부상서로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원나라에 가서 황태자의 천추절(千秋節)을 축하하고 이듬해 돌아왔다. 1362년 원나라에서 덕흥군(德興君) 탑사첩목아(塔思帖木兒)를 고려왕으로 삼으려 한다는 소식이 있자, 이부상서로서 서북면체복사(西北面體覆使)가 되어 그 진위를 조사하였다.
1363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안동으로 피난할 때 전 개성윤(前開城尹)으로서 호종한 공으로 신축호종공신(辛丑扈從功臣)에 2등으로 녹권되었다. 1365년 3월 밀직부사에 임명된 뒤 다음 달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나 원의 내란으로 길이 막혀 되돌아왔다. 5월에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졌다.
1372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촉(蜀)나라를 평정한 것을 축하하고, 이듬해 8월 돌아오는 도중 허산(許山)에서 태풍을 만나 익사하였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