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림사 영원전 지장보살 좌상 및 권속 ( )

숭림사 영원전 지장보살좌상 및 권속
숭림사 영원전 지장보살좌상 및 권속
조각
유물
문화재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소재 숭림사 영원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좌상과 그 권속들.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소재 숭림사 영원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좌상과 그 권속들.
개설

200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익산 함라산(咸羅山) 숭림사 영원전에 봉안된 목조 지장보살좌상 1구와 도명존자상(道明尊者像), 무독귀왕상(無毒鬼王像) 등 권속 24구로, 전체 25구이다.

지장보살은 죽은 후 육도윤회(六道輪回)나 지옥에 떨어지는 중생들을 구제해 주는 명부(冥府)의 구세주로,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불화나 조각상으로 많이 조성되었다. 고려 후기나 조선 초기의 경우 단독상으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차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상을 협시로 한 삼존상이나 인간들의 죄의 경중을 심판하는 심판관인 시왕상(十王像), 인왕상(仁王像), 동자상(童子像) 등의 권속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영원전은 명부전(冥府殿)의 별칭으로, 그 명칭은 일반적이지는 않으나 계룡산 신원사(新元寺) 영원전 등의 몇 예가 있다.

숭림사 영원전은 처음 1697년(숙종 23)에 지어졌으나 1914년에 소실되었고, 지금의 것은 1926년 숭림사 북쪽 화산 기슭에 있던 성불암(惺佛庵)의 칠성각(七星閣)을 옮겨 지은 것이다. 숭림사 지장보살좌상은 1634년(인조 12)에 조성되었다고 하며, 그 권속도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래는 군산시 서수면 축동리 보천사(普天寺)에 있던 것을 현재의 숭림사 영원전으로 옮겨 모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

지장보살좌상은 민머리형으로, 고창 등의 전라도 지역에서 유행한 두건 쓴 두건형 지장보살과 대조된다. 방형의 얼굴은 옆면이 거의 직선으로 내려와 더욱 딱딱하고 경직된 형태를 보여준다. 양 미간 사이에 백호가 있고 눈썹은 반달형으로 녹색 안료로 그려졌다. 눈은 반개하였는데 끝이 치켜 올라가지 않고, 위와 아래가 수평적으로 표현되어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긴다. 코는 둔중하고 콧등도 편평하게 조각되어 칼날처럼 예리한 다른 목조불상의 표현과 차이가 난다. 입은 가로로 길게 늘여 미소를 짓고 있으며, 목에는 아래로 쳐진 삼도가 조각되었다. 신체는 양감이 잘 표현되어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약간 튀어나온 배를 제외하고는 굴곡과 볼륨이 없이 밋밋한 신체표현은 조선시대 불상조각에서 흔히 보이는 일반적인 미감을 나타낸다. 전체적인 구도는 이등변삼각형의 구도로 안정된 느낌을 주지만 특히 하체의 블록화된 신체는 현실성이 결여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수인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중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을 결하고 있는데 두 손을 별목(別木)으로 만들었다. 천의는 대의형으로 소매가 길게 늘어지는 포형(袍形)이다. 착용방식은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으로 목선을 따라 배 부분까지 길게 늘어져 내려오다 내의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다른 상들에 비해 내의 쪽으로 들어가는 옷자락이 반원형으로 크게 조각되었다. 내의는 가슴을 가로지르도록 조각되었는데, 왼쪽 어깨에는 삼각형으로 접힌 옷자락이 조각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어깨를 반달형으로 덮은 옷자락이 보인다.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였으며 그 사이로 부채꼴형 주름이 넓게 조각되었다. 왼쪽 소맷자락은 숭림사 보광전 목조석가여래좌상과 같이 넓게 퍼져 오른발 끝을 살짝 가리고 나머지는 발 아래로 흘러 내려온다. 옷주름선은 생략적이면서도 경직되어 목불이 주는 유려함이 많이 줄어들었다.

지장보살좌상의 좌우에는 흙으로 빚은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도명존자는 「환혼기(還魂記)」라는 중국의 영험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설화에 나타난 도명존자는 중국의 양주(襄州)에 있는 개원사(開元寺)의 스님으로 지옥사자에 의해 지옥에 가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와 자신이 명부에서 본 바를 세상에 알리고 그림을 그린 연유로 지장보살의 협시가 되었다고 한다. 숭림사 영원전 도명존자상은 젊은 사미승(沙彌僧)의 모습으로 얼굴의 형태와 세부표현에서 지장보살좌상과 거의 흡사하다. 채색은 적색과 청색, 녹색, 황색, 흰색의 5방색 중심이며, 손에는 금강경을 들고 있다. 무독귀왕은 도명존자와 함께 대표적인 지장보살의 협시로 지장보살의 전생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재수보살(財首菩薩)의 전신인데, 머리에는 관을 쓰고 단령의 포를 입었으며 손을 모아 홀을 잡고 있다. 이 상 역시 지장보살좌상이나 도명존자상과 유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지장보살삼존상 좌우로는 시왕상이 배치되었는데 모두 의자에 앉은 좌상으로 조각되었다. 중국 당말(唐末) 오대(五代)경에 찬술된 『불성예수시왕생칠경』에 의하면, 사람들은 죽은 후 명부로 가는 도중에 차례로 열 명의 왕 앞을 지나며 재판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 열 명의 왕이 바로 시왕이다. 시왕은 지장보살과 함께 명부전의 핵심을 이루는 상인데, 숭림사 영원전의 시왕상은 서로 다른 피부색과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방형의 평면적인 얼굴 형태라든가 세부 표현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시왕의 옆으로는 장군상과 판관상, 동자상과 인왕상을 배치하여 명부의 세계를 재현해 놓았다. 이 중 동자상은 옷의 형태나 세부표현에서 형식화가 진행되었지만 쌍계(雙髻)의 머리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자상 특유의 인상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나한전에 봉안되어 있는 동자상도 같은 양식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또 영원전 맨 가장자리에 위치한 인왕상은 역사상(力士像)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미감을 준다.

특징

지장보살좌상은 민머리형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유행한 두건형 지장보살과 대조된다. 눈의 끝이 치켜 올라가지 않고, 위와 아래가 수평적으로 표현되어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기며, 콧등도 편평하게 조각되어 칼날처럼 예리한 다른 목조불상의 표현과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한편, 영원전 맨 가장자리에 위치한 인왕상은 역사상의 굳센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미감을 준다.

의의와 평가

숭림사 영원전 지장보살좌상과 권속은 명부의 세계를 조각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조선 후기 조각양식을 보이면서도 진전된 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권속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17세기 조각상으로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문화재』(문화재청·대한불교조계종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3)
『전통사찰총서』8(사찰문화연구원, 1997)
『조선시대 지장시왕도 연구』(김정희, 일지사, 1996)
집필자
정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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