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신라 말의 무염대사(無染大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심곡사의 명부전에 봉안된 목조 지장보살좌상 1구와 소조 도명존자상(道明尊者像), 무독귀왕상(無毒鬼王像) 등의 권속 25구로, 총 26구의 조각상이다. 양식적 특징으로 볼 때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지장보살상과 도명존자상, 무독귀왕상으로 구성된 삼존상과 시왕상 등의 권속을 좌우로 배치하여 사후세계인 명부를 조각상으로 표현하였다. 지장보살좌상은 나무로 만든 목조 불상으로, 얼굴의 형태는 방형으로 양감이 넘친다. 팽만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가운데로 몰려 있다. 눈은 가늘게 반개하였으며, 코는 짤막하고 콧등이 편평하게 처리되었다. 인중이 두드러지게 조각되었고 입은 미소를 짓고 있으며 귀에는 귀걸이를 하고 있다. 목은 움츠러들어 매우 짧게 조각되어 얼굴과 어깨가 거의 맞닿아 있으며 형식적인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신체의 표현은 당당하게 표현되었으나 밋밋한 가슴과 신체의 굴곡을 살리지 못하여 평면적이다. 비스듬히 내려온 어깨에는 통견의 대의형 천의를 입었는데, 양쪽 어깨에 반전된 옷자락이 특징적이다. 벌어진 가슴 사이로 일직선의 내의가 보이며 내의 쪽으로 들어가는 옷자락이 보인다.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였는데 왼쪽 소매의 일부가 늘어져서 일부는 결가부좌한 오른발 끝을 살짝 덮고 나머지는 발 아래로 흘러내렸다. 다리 사이에는 부채꼴형 옷주름이 조각되었다. 전체적으로 옷의 표현은 깊고 형식적이며 도식적인 주름으로 마무리되었다. 손은 별목(別木)으로 제작하여 끼워 넣은 것으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손의 크기가 유난히 크고 손가락의 굽힌 정도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지장보살의 협시인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은 등신대의 조각인 점이 주목된다. 도명존자상은 젊은 사미승의 모습으로, 무독귀왕상은 머리에 관을 쓰고 문관의 옷을 입은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그 옆으로는 시왕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시왕상도 무독귀왕상처럼 문관의 복장을 하고 있으나 입상이 아닌 좌상으로 조각되었다. 시왕은 사자(死者)의 죄의 경중을 심판하는 왕으로 지장보살과 함께 명부의 핵심적인 상이다. 시왕상도 등신대의 크기로 조각되었으며 서로 다른 자세와 표정, 시선의 처리 등에서 다양함과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세장하고 힘이 빠져 시왕의 위엄은 많이 축소되었다. 이밖에 귀왕상과 판관상, 사자상과 동자상, 인왕상 등이 함께 봉안되었다. 특히 갑옷을 입고 있는 인왕상의 친근하고 해학적인 얼굴 표정이 주목된다.
목조 지장보살좌상과 권속은 조선 후기 조각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조각상들로, 평면적 얼굴과 세장하고 힘이 빠진 신체, 인왕상의 해학적인 얼굴 등이 특징적이다. 또한, 지장보살의 협시인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 그리고 시왕상이 등신대의 크기로 조각된 점이 주목되며 시왕상의 서로 다른 자세와 표정, 시선의 처리 등에서 다양함과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지장보살상과 그 권속이 함께 남아 있는 조선 후기 목조불상으로서 이 시기 불상 및 그 권속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