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139㎝이며,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가 128㎝이며,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높이가 131㎝이다. 이 삼존좌상은 조성 원문을 통하여 1645년에 청허(淸虗) 등 6명의 화승이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불상 속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에 따르면, 순치 2년(조선 인조 23, 1645)에 많은 사부대중이 발원에 참여하고, 지희(智熙)스님의 증명 아래 청허(淸虛), 영색(英賾), 현욱(玄旭), 천휘(天輝), 나흠(懶欽), 법찬(法燦) 등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 조성을 주도했던 조각승 청허는 조선시대 17세기의 대표적인 조각승인 청헌(淸憲)과 동일한 인물로 추정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통견식의 착의 형식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신체 비례가 적절하며,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가락을 구부린 설법인을 결하고 있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원통형 정상계주가 있고, 나발 사이에는 반달형 중앙계주가 있다. 얼굴은 비교적 넓은 방형으로서 뚜렷한 인중과 작은 입술에서 근엄한 모습이 나타난다. 넓은 이마와 부풀어 오른 눈꺼풀, 살짝 뜬 눈, 돌출한 코 등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상체는 다부진 모습으로, 가슴이 편평하며 아랫배가 살짝 나와 있다. 결가부좌한 하체는 무릎이 낮고 넓어서 안정감을 준다. 법의는 통견 형식으로 착용하였다. 내의는 가슴까지 올려 수평을 이루며, 왼편의 대의자락은 발가락을 덮고 있으며, 오른편의 것은 부채살 모양의 주름으로 형식화되었다.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상호와 신체 비례, 수인, 착의법 등 형식적인 특징은 목조아미타불좌상과 동일하다. 그러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수인과 신체 비례, 상호 등이 아미타불상, 대세지보살상과 같지만, 착의법에서 차이가 난다. 비록 관음보살좌상이 통견형식으로 법의를 입었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곳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여러 명의 조각승이 일을 분담하여 여래삼존상을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두 보살좌상의 세부 모습을 살펴 보면, 정수리에 틀어 올린 보개는 비교적 높은 편이며, 보발은 어깨에 닿아서 세 개의 원형을 이룬 후 다시 세 가닥으로 흘러내린다. 또한 꽃문양의 귀걸이와 팔찌를 착용하였고, 목걸이는 하지 않았다.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청허가 조성한 불상 가운데 삼존의 형식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는 점 외에도 상호의 표현과 안정된 신체 비례 등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즉 조선시대 17세기의 조각승 청허의 역작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청허 유파에 의해 조성된 불상 중에서 다소 연대는 늦어나 조각적인 완성도가 가장 높은 불상이다. 이들 불상은 조각승의 이름과 조성 연대가 분명하여 조선시대 조각사 연구의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