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24년에 제작된 석가모니후불탱은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응진전의 정면 중앙에 위치한다. 주존인 석가모니는 대좌 위에 항마촉지인을 하고 앉아 있으며 그 좌우에는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그리고 가섭과 아난존자가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1725년에 제작된 십육나한탱는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를 이루었으며 미륵이 올 때까지 이 땅에 남아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고 있는 불제자 16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송광사본은 총 여덟 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석가모니후불탱의 좌우에 각 4폭씩 배치되어 있다. 그 중 여섯 폭에는 십육나한이, 나머지 두 폭에는 호법신중이 표현되어 있다. 제1폭에는 십육나한 중 제1, 3, 5존자, 제2폭에는 제2, 4, 6존자, 제3폭에는 제7, 9존자, 제5 폭에는 제11, 13, 15존자, 제6폭에는 제12, 14, 16존자가 그려져 있으며, 제7, 8폭에는 각기 제석천과 명부사자, 그리고 신장이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후불탱은 조선조 18세기의 대표적인 화승인 의겸의 주도하에 그려진 것으로 존상 표현이 단아하고 필선 및 채색이 섬세하며 유려하다. 여래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모두 갖추고 당당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는 비교적 작게 표현되어 있다. 여래의 양옆에 서있는 보살들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다양한 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있으며 여래의 좌측에 위치한 문수보살은 손에 여의를 들고 있고, 우측에 위치한 보현보살은 연꽃을 받쳐 들고 있다. 제자들인 가섭과 아난존자는 여래와 두 보살의 사이에 상반신만 표현되어 있지만 앞으로 살짝 몸을 내밀고 있는 듯한 모습이 자연스럽다.
십육나한탱은 화승 붕안과 회안의 주도로 그려졌다. 석가모니후불탱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홀수의 존자, 우측에는 짝수의 존자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는데, 응진전 내 나한도가 걸릴 벽면의 크기에 맞추어 제작되었기 때문인지 각 화면의 크기가 다르다. 십육나한은 기암괴석과 구름을 배경으로 하여 선정에 들어 있거나 경전을 읽거나 등을 긁는 등 다양한 자세로 앉아 있다. 나한은 대체로 시자(侍者)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 밖에 용을 부르거나 호랑이를 끼고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나한의 옆에는 각 존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나한은 불교경전에 그들의 형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비교적 자유롭게 그려지는 편이며, 때론 선행 작품 속의 모습이 참고되기도 하는데, 송광사 십육나한탱의 경우는 중국 명대 판본인 『삼재도회』에 수록된 불조도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또한 의겸의 주도로 1723년에 제작된 여수 흥국사 십육나한도와 비교해 보았을 때 존상들의 형상 및 화풍이 유사한 것으로 미루어 일부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나한도에는 제석천과 명부사자, 신장 등의 호법 신중이 함께 그려지는데 위계상 나한보다 아래에 위치하므로 일반적으로 제15, 16존자 뒤에 그려져 있다. 송광사 전각의 상황 때문인지 호법신중이 별도의 폭에 제작되어 있지만, 당시 십육나한탱과 일괄 제작되어 전각 내에 가장 하단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조 18세기의 대표적 불화들로 당시 석가모니후불탱과 십육나한탱의 화면 구성 방식과 구도는 물론 채색과 필선, 그리고 문양 등의 표현기법을 파악하는데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