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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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제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통행정을 관장하던 중앙관청.
목차
정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통행정을 관장하던 중앙관청.
개설

교통부의 설치는 1919년 4월부터였다.

내용

1919년 11월 5일 공포된 대한민국임시관제에 의하면, 교통부의 조직은 비서국·철도국·통신국·해운국 등 4개 지국으로 편성되어 있다.

철도국은 철도 건설에 관한 사항, 국유철도 관리와 부속 영업에 관한 사항, 육상운수 감독에 관한 사항, 민유철도에 관한 사항, 철도 재료의 구매·제조·분배·보관에 관한 사항을 맡아 처리하였다.

통신국은 우전(郵電)에 관한 사항, 우편 저금·환전에 관한 사항, 전보·전화 기타 전기에 관한 사항, 민유전업(民有電業)에 관한 사항을 처리하였다. 해운국은 일체 해운에 관한 사항, 항업(航業) 및 항구 표지에 관한 사항, 선박·선원과 수상 운수에 관한 사항을 처리하였다.

이 밖에도 교통부의 관할 하에서 국내와 긴밀한 연락을 꾀하며 활동한 하부 조직으로 교통국이 있다.

변천

교통국은 1919년 5월 국내로 들어오는 요충지인 안동현(安東縣) 구시가(舊市街)인 흥륭가(興隆街) 이륭양행(怡隆洋行) 2층에 교통부 안동지부를 설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조직의 확산은 1919년 8월 「임시지방교통사무국장정」이 공포되면서부터였다. 이에 의하면, 교통부 체전(遞傳) 업무를 위해 중요한 지점에 임시교통사무국을 설치하고, 임시지방교통사무국장은 필요한 지점에 지국을 설치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장정에 의해 1919년 10월 17일부터 안동교통지부는 임시안동교통사무국으로 바꾸어 관할 구역을 평안남북도에 국한하게 되었다. 이밖에 의주군교통국·강변8군임시지방교통국·임시함경남도교통사무국·관전통신국(寬甸通信局)·간북교통부(墾北交通部)·경성교통국 등 7개 교통국이 조직되었다.

교통국의 조직망은 평안남북도·함경남북도·황해도·서울·만주 등지였다. 남한 지역의 교통국은 경상북도 교통국장 안상길(安相吉)과 경상남북도 교통기관을 설립하기 위해 출장 중이던 김태규(金泰圭)가 체포되면서 무산되었다. 각 교통국은 함경남도만이 교통부의 지시를 받았을 뿐, 계통에 따르지 않고 직접 정부에 보고하기도 하였다.

교통부의 주요 업무는 1920년 3월에 공포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정방침 제3항 교통편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 각지에 통신기관을 두고 체전인(遞傳人)을 배치하여 각종 서류를 전달하는 일, 둘째 기선 및 범선으로써 항해 사업을 시설하여 내외의 직접 내왕을 편리하게 하는 일, 셋째 필요한 지점에 무선 전신·전서구(傳書鳩) 등을 비밀리에 설치하여 통신을 민속히 하는 일, 넷째 통신 기관·체전인으로 하여금 탐정의 임무를 겸하게 하여 각지 정황을 탐사하게 하는 일, 다섯째 국내의 뜻있는 청년으로 하여금 기차 및 선박에 고용하게 하여 비밀통신을 담당하게 하는 일 등이었다.

이처럼 교통국의 활동은 단순한 통신 연락 이외에도 정부의 자금 모금, 국내 정보의 수집·보고, 정부의 지령·서류를 국내에 전달, 교통국의 조직 및 독립운동을 위한 인물 소개와 연락 등을 광범위하게 포괄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조직이 탄로나 많은 수난을 당하였다.

1920년 안동교통국장 홍성익(洪成益)이 붙잡혀 수많은 지국의 조직이 탄로났고, 같은 해 10월에는 경성교통국의 이원직(李元稙) 외 17명이 붙잡히는 등, 1922년 이후에는 거의 활동이 중지되었다. 교통부를 통괄하는 교통부의 장은 교통총장이었다.

역대 총장으로는 문창범(文昌範)·김철(金徹)·남형우(南亨祐)·손정도(孫貞道)·이탁(李沰)·조상섭(趙尙燮) 등이다. 1925년 이후 교통부는 폐지되었다. 그 뒤, 1942년 제34회 의정원회의에서 학무부와 함께 부활하여 유동열(柳東說)이 교통총장을 맡았으나,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잠행 중앙관제 수정에 따라 다시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임시정부사(大韓民國臨時政府史)』(이현희, 집문당, 1982)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 2(국사편찬위원회, 1971)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교통국(交通局)과 연통제(聯通制)」(이연복, 『한국사론(韓國史論)』 10, 국사편찬위원회, 1981)
집필자
이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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