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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禁書)

사회구조개념용어

 관청에 의해 출판이나 반포가 금지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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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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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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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관청에 의해 출판이나 반포가 금지된 책.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금서는 기존의 정치·안보·규범·사상·신앙·풍속 등의 저해를 이유로, 법률이나 명령에 의해 간행·발매·소유·열람을 금지한 책자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금서의 제재형태를 살펴보면, 분서(焚書)·반포 금지·사장 금지(私藏禁止)·구래 금지(購來禁止)·판매 금지·열람 금지 등이 있다.
분서는 동서양에서 일찍부터 행해졌는데, 동양의 경우 서기전 213년 진시황(秦始皇)이 일종의 금서령인 협서율(挾書律)과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여 의약·복서(卜筮)·농업에 관한 책만을 민간에서 소장하도록 허가하고, 시서(詩書)·육경(六經) 등을 불태워 버렸다.
금서의 역사는 일찍이 서기전 4세기에 중국 춘추시대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老子)의 『도덕경 道德經』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은 당시 유가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때에 이단으로 인정되어 1281년 금서처분되었다.
서양의 경우는 서기전 411년 아테네에서 프로타고라스가 지은 『제신(諸神)에 관하여』라는 책이 독신죄(瀆神罪)에 해당된다고 하여 불태워 없애버렸다. 그 뒤 13세기 말 단테의 『신곡』, 14세기 중엽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16세기 중엽,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천체의 회전에 관해』 등의 책들을 금서로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411년(태종 11) 좌의정 박은(朴訔)이 태종의 뜻을 받들어 서운관(書雲觀)과 민간에 소장된 참위서(讖緯書)와 음양서(陰陽書)를 수색, 압수하여 불태워 버리도록 명령한 것이 금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고려 말·조선 초와 같은 왕조교체기에는 많은 도참(圖讖)과 비기(秘記)가 성행하게 마련이지만, 일단 왕조가 성립된 다음에는 그와 같은 책자를 없애는 것이 왕조의 안위에 중요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성리학이 유일한 정통사상으로 확립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태종뿐만 아니라 세조와 성종도 혹세무민(惑世誣民)하며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각종 참위서와 음양서를 압수하도록 하였다.
1457년(세조 3)의 금서목록을 보면, 『고조선비사 古朝鮮秘詞』·『대변설 大辯說』·『조대기 朝代記』·『주남일사기 周南逸士記』·『지공기 誌公記』·『표훈천사 表訓天詞』·『삼성밀기 三聖密記』·『안함로원동중삼기 安含老元董仲三記』·『도징기 道澄記』·『지이성모하사량훈 智異聖母河沙良訓』·『문태산왕거인설업등삼인기록 文泰山王居仁薛業等三人記錄』·『수찬인심소일백여권 修撰人心所一百餘卷』·『동천록 動天錄』·『마슬록 磨蝨錄』·『통천록 通天錄』·『호중록 壺中錄』·『도선한도참기 道詵漢都讖記』의 19종이다.
한편 1470년(성종 1)의 금서목록은 『주남일사기』·『지공기』·『표훈천사』·『삼성밀기』·『도징기』·『지이성모하사량훈』·『문태산왕거인설업등삼인기』·『수찬인심소일백여권』·『호중록』·『지화록 地華錄』·『명경수 明鏡數』·『태일금경식 太一金鏡式』·『도선참기 道詵讖記』의 12종이다.
이와 같은 요서율(妖書律)의 시행으로 참위서와 음양서는 대폭 정리되었지만, 금서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지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뒤에도 서책에 대한 탄압은 그치지 않았다. 1504년(연산군 10)에는 연산군의 폭정을 비난하는 한글격서(檄書)가 등장하자, 기훼제서율(棄毁制書律)을 만들어 한글로 된 책을 모조리 없애게 하였다.
다음 해에는 관청문서와 『여지승람 輿地勝覽』 등의 민간 소장을 금하였는데, 나라의 비밀이 일본 같은 외국으로 새어나가는 것과 반역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며, 특히 조선 전기에는 이러한 책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금서는 정치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고 학문과 사상의 영역에서도 법률과 불문율로서 정해지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양명학(陽明學)·노장(老莊)·불교에 관한 책자들이었다. 성리학이 조선조의 정통사상으로 확립되면서 사대부들이 이단의 학문과 사상을 조금이라도 공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왕양명(王陽明)의 저술은 중국에서 구입했다 해도 의주(義州)에서 돌아오는 사행사절의 짐을 검사할 때 그 반입이 발각되면 소지자는 처벌을 면하지 못하였다. 또한 사대부들이 사찰을 수색하여 불경과 경판(經版)을 소각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도교신앙도 배격되었으며, 단지 상품(上品)의 노장만이 주로 수양을 위해 사대부 사이에 은밀히 돌았을 따름이었다.
당파싸움이 심해지는 것과 함께 금서도 당파에 따라 정해졌다. 예를 들면 서인들의 스승인 이이(李珥)의 이기론(理氣論)을 비판하고 서인과는 다르게 복제설(服制說)을 주장한 남인 이현일(李玄逸)의 문집은 서인들의 공격으로 오랫동안 간행될 수 없었다. 그 밖에도 반역자와 같은 국가의 중죄인의 저술도 법률로써 금서가 되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그 후손에 의해 소각, 파기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금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정감록 鄭鑑錄』이다. 『정감록』은 풍수학적으로 조선의 국운을 예언한 도참서로, 조선은 500년 만에 멸망하고 정씨(鄭氏)가 왕위에 올라 계룡산에 도읍을 세운다는 것이 그 내용의 요점이다. 세조 및 성종 때의 금서목록에 들어 있지 않은 점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며, 거의 필사본으로 전해졌고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정감록』 안에는 「감결 鑑訣」·「동국역대본궁음양결 東國歷代本宮陰陽訣」·「삼한산림비기 三韓山林秘記」·「무학비결 無學秘訣」 등이 들어 있으며, 행문(行文)이 어렵고 미묘하며 은어와 파자(破字)가 섞여 있어 여러 방면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정감록』을 믿고 유포시킨 자들은 당파싸움에서 패배한 자나 관직을 얻으려고 하는 자 그리고 현실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많았다. 다시 말하면 재야지식인의 현실비판서이기도 하며, 난세의 현실도피서이기도 하였다. 이 책은 한글로도 지어져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새로운 세계의 출현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정감록』에 나오는 참위풍수설의 구절을 내세워 반역을 도모한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예를 들면 1628년(인조 6)에는 유효립(柳孝立)이 계룡산에 새로운 도읍을 세우게 된다고 하여 옥사를 일으켰고, 1811년(순조 11)에는 홍경래(洪景來)의 격문 속에도 『정감록』의 구절이 나오고 있다.
16세기 이후에는 중국에 간 사행사절(使行使節)을 통하여 서양문물에 관한 책들이 다수 수입되어 사대부들에게 읽혀졌다. 그러나 정조 때에 이르러 천주학이 사학(邪學)으로 박해를 받게 되자 천주교 서적은 물론 기타의 서학책들도 금서가 되었다.
1785년(정조 9) 중국에서 서양의 문물과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귀국한 이승훈(李承薰)이 역관(譯官) 김범우(金範禹)의 집에서 여러 천주교 교도와 함께 예배를 보다 발각된 사건이 일어나자 정언(正言) 유하원(柳河源)은 서학책의 금단을 주장하고, 대사헌 김이소(金履素)도 불경사서(不經邪書)의 구입을 엄금할 것을 상소하여 중국으로부터의 서학책 반입이 금지되었다.
그 뒤 1787년 정약용(丁若鏞) 등의 반촌사건(泮村事件)이 일어난 뒤 천주교에 대한 경계는 더욱 강화되었고, 다음 해에는 서학책들을 소각하라는 명령이 나오게 되었다. 그때의 목록을 보면, 『천주실의 天主實義』·『십이단 十二端』·『칠극 七克』·『성교천설 聖敎淺說』·『성리진전 性理眞詮』·『만물진원 萬物眞源』·『기하원본 幾何原本』·『수리정온 數理精蘊』·『서국기법 西國記法』·『해국도지 海國圖志』·『만국여도 萬國輿圖』 등이 있었다.
그리고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패관잡기 稗官雜記』도 유입을 금지시켰다. 1791년의 진산사건(珍山事件)을 계기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졌고 서학책들은 압수되어 소각되었다. 또한, 홍문관에 소장되어 있던 서학책을 전부 소각하였고, 민간에서도 서학책들을 소장할 수 없도록 명을 내렸다.
성리학적 가치에 위배되는 이단사설(異端邪說)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으며 특히 그것이 정치권력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박해를 면하지 못하였다. 다만, 이전에는 금지되었더라도 실제 정치권력에서 아예 벗어나 미미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상과 신앙에 관한 것은 어느 정도의 관용을 베풀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풍수지리·둔갑장술(遁甲藏術)·관상술(觀相術)·무속 등 소위 잡학(雜學)이 민간에서 성행하였다. 한편, 정부에서는 동학교도가 기존질서에 위험한 존재라고 판단하고,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 東經大全』과 『용담유사 龍潭遺詞』를 금서로 규정하였다.
1880년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김홍집(金弘集)이 청나라 황준헌(黃遵憲)이 지은 『조선책략 朝鮮策略』을 얻어와 널리 유포시키자, 다음해 개화정책을 반대하는 유림들이 이만손(李晩孫)을 소두(疏頭)로 하여 만인소(萬人疏)를 올렸고, 홍재현(洪載賢) 같은 개인들도 상소를 올렸다.
유림들은 한결같이 김홍집을 규탄하고 『조선책략』을 소각할 것을 극력 주장하였으며, 그 밖에도 『중서문견 中西聞見』·『만국공법 萬國公法』·『공사 公史』 등 서양에 관한 책들도 색출하여 종로 네거리에서 불태울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유림들의 개화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개화서적이 들어와 널리 읽혔다.
금서에 대한 조처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 것은 일제에 의한 민족운동의 탄압에서 비롯되었다. 일제는 1905년의 을사조약을 계기로,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자존심을 되살리며 문화의 우수성을 고무하는 내용의 책자를 엄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출판물이 제작되어 학교와 사회에 배포되면서 구국운동을 진작시키자 일제는 더욱 엄격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1908년 8월에는 「교과용도서검정규정 敎科用圖書檢定規程」을 공포하여 교과서에 관한 검인정제도를 실시하였다.
그 검정규정의 심사기준을 보면, 많은 교과서들이 자주독립적인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항일 정신을 배양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일제의 금서정책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일제는 출판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1909년 2월 법률 제6호로써 「출판법」을 공포하였다.
이 법에서는 문서나 도서를 출판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원고를 첨부하여 지방장관을 경유, 내무대신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이미 출판된 저작물에 대해서는 안녕질서나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은 그 발매나 반포를 금하고 각판인본(刻版印本)을 압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로써 앞으로의 모든 출판물에 대한 사전검열제도를 확립하였다.
이와 같은 법적 규제에 의하여 내부대신 박제순(朴齊純)은 치안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현채(玄采)의 『월남망국사 越南亡國史』·『유년필독 幼年必讀』·『유년필독석의 幼年必讀釋義』·『중등교과동국사략 中等敎科東國史略』과 김대희(金大熙)의 『20세기조선론』, 이상익(李相益)의 『월남망국사』, 안국선(安國善)의 『금수회의록 禽獸會議錄』, 윤치호(尹致昊)의 『우순소리』 등 8권에 대한 발매·사용 금지조처를 취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일제는 1910년 11월까지 50여 편의 도서를 발금도서로 묶었다. 한편 그 해 5월 말까지는 130여 권의 교과서에 대한 검인정을 보류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발매·사용이 금지된 도서 중에서 치안상의 이유로 묶여 있는 것을 단행본 중에서 일부 소개하면, 최영조(崔永祚)의 『면암선생문집 勉菴先生文集』 중의 일부, 이원(李源)의 『동국문헌보유 東國文獻補遺』, 창해자(滄海子)의 『양의사합전 兩義士合傳』, 정인호(鄭寅琥)의 『초등대한역사』, 신채호(申采浩)의 『을지문덕』 등 대부분 역사·지리·국어 교과서였다.
일제의 무단통치하에서는 출판물에 대한 규제가 더욱 철저하였다. 이 시기의 금서는 김병헌의 정치소설인 『서사건국지 瑞士建國誌』, 윤치호의 『찬미가』, 이승만(李承晩)의 『독립정신』, 김병제(金丙濟)의 『동서양역사』, 이해조(李海朝)의 『자유종』·『철세계』, 유길준(兪吉濬)의 『노동야학』, 김대희의 『상업범론』, 김택영(金澤榮)의 『역사집략』 등이다.
1920년대에 일제는 이른바 문화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출판물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척하였으나, 여전히 민족독립정신을 고취시키거나 공산주의사상을 전파하는 책자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특히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혹독하게 출판물을 탄압하여 조금이라도 일제의 식민지배를 저해하는 책자는 가차없이 금서화하였다. 일제에 의하여 1941년 1월까지 발매·반포가 금지된 우리말 책은 모두 342종이었다. 이는 「출판법」에 따라 행정처분된 것이다.
처분 내용은 거의 치안 방해인데 풍속 교란을 이유로 붙인 것도 약간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보면, 박은식(朴殷植)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한국통사』, 황현(黃玹)의 『매천집 梅泉集』, 김영우의 『대한독립혈전기 大韓獨立血戰記』, 김병조(金秉祚)의 『한국독립운동사략』,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 안재홍(安在鴻)의 『월남 이상재』, 김동환(金東煥)의 『시가집 詩歌集』, 최현배(崔鉉培)의 『조선민족갱생의도』, 김동진(金東縉)의 『갑오동학란』, 엄항섭(嚴恒燮)의 『도왜실기 屠倭實記』, 권병덕(權秉悳)의 『이조전란사』, 배성룡(裵成龍)의 『조선경제론』·『카프시인집』, 안익태(安益泰)의 『대한국애국가』 등이 있으며, 몇 권의 족보마저 금서가 되었다.
광복 이후 미군정당국은 구한말에 출판물을 규제하기 위해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광무신문지법 光武新聞紙法」까지 동원하였고, 포고령 88호를 공포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에는 출판물을 더욱 규제하였으며, 특히 공산주의 관계서적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자유당 정권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출판·언론을 탄압하기 위하여 「국가보안법」까지 발동하였다. 그 탄압대상은 대부분 신문·잡지였고, 금서는 상당히 드물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출판업계의 부실과 철저한 반공정책 때문이었다.
5·16군사정변 이후에도 출판·언론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금서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10월유신 이후 학원 등에서 축출된 반정부 지식인들은 출판을 민주화의 한 방법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므로 1970년대 이후에 쏟아져 나온 각종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민중사적 역사의식, 제3세계에 대한 관심, 자본주의경제 비판 성향을 강하게 보였으며, 민주화운동에 이념·방법·활력을 제공하였다. 특히 해외의 사회과학서적 번역물들은 이러한 성격이 더욱 농후하였다. 이때의 금서는 40여 권에 달하였다.
제5공화국의 출판정책은 반체제지식인들의 출판문화운동이 유신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커다란 구실을 하였다는 인식 위에 세워졌다. 정권 출범 직후인 1980년 7월 31일에 사회정화의 측면에서 1970년대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쳐온 『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씨ᄋᆞᆯ의 소리』 등을 폐간시켰다.
비록 「헌법」에서의 언론·출판의 자유는 보장되었으나 정부는 「경범죄처벌법」·「행정절차법」 등을 이용하여 출판활동을 통제하였다.
그러나 1982년 7월, 정부는 당시 표방하고 있던 자율화정책에 따르는 한편, 공산주의사상의 금단이 오히려 호기심과 지적 편향을 야기시킨다고 판단하여 금기시해왔던 공산주의 관련 서적의 발행과 반포를 학술·정책 연구 등에 제한적으로 허가하였다.
그 결과 많은 양과 여러 종류의 이념서적이 출판되었고, 이러한 책들은 학생들에 의해 널리 읽히게 되었다. 그러나 금서를 풀게 하였던 정부는 이 책들이 학생운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고 다시 이념서적들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그 한 예가 1986년 5월 1일을 기하여 서점·출판사·인쇄소·복사업체 등을 수색하여 이념도서 233종을 압수한 것이다.
이러한 책의 압수는 1989년에도 계속되었고 그 해 2월, ‘풀빛’사의 나병식은 『한국민중사』발간으로 구속되는 등 그 해 2월 27일 민중사에서 제작중이던 『고문 성고문Ⅰ』 2,000부가 압수되기도 하였다.
1871년 당시 문공부는 6·29선언에 이어 그 해 10월 19일 출판활성화방안을 발표하고 지난날 431종에 이르는 도서의 판매금지를 해제하고 1988년 3월 31일 납북작가인 정지용(鄭芝溶), 김기림(金起林)의 작품을 해금했다. 뒤이어 7월 29일에는 월북작가 120여 명의 해방 전 발표작품에 대해 출판을 전면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체제에 적극 협조한 홍명희·이기영·백인준·조영출·한설야 등 5명만은 예외로 하고 나머지 시인·소설가·평론가들을 전원 해금하였다. 그 밖에 풍속에 의한 금서의 경우도 있다. 1991년 1월 12일 폭력과 정사 장면의 지나친 묘사로 미풍양속을 해친 『바람과 불』을 출판한 자유시대사 대표 김태진을 구속하고 출판등록을 취소하였다.
1992년 10월 29일 소설 『즐거운 사라』를 판매금지하고 작가 마광수와 이를 출판한 청하출판사의 대표 장석주를 음란물 제작 및 판매혐의로 구속하였다. 1997년 5월 30일 법원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작가 장정일에 대해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였는데, 김영사가 발행한 이 책은 출판사가 스스로 서점에서 수거, 판매를 중단시킨 경우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사회 발전에 따라 이러한 금서정책은 많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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