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령 설화 ()

구비문학
작품
조선 중기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에 관한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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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덕령 설화」는 조선 중기의 의병장 김덕령에 관한 설화이다. 임진왜란 당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물전설이다. 「김덕령 설화」는 연고지인 광주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광포 설화(廣浦 說話)이다. 내용은 크게 출생, 용력 발휘 및 공을 세움, 억울한 죽음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오뉘 힘내기 전설」과 결합하기도 한다. 김덕령에게 「아기장수 전설」의 좌절당한 영웅의 모습과 민족적 영웅의 면모까지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 설화는 일종의 민간 영웅담으로 볼 수 있다.

정의
조선 중기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에 관한 설화.
전승 및 채록

문헌 설화(文獻說話)는 『연려실기술』, 『동야휘집(東野彙輯)』, 『풍암집화(楓巖輯話)』, 『대동기문(大東奇聞)』 등에 전하며, 구전 설화(口傳說話)는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김덕령(金德齡)의 뛰어난 용력에 대한 일화나 억울한 죽음에 관한 내용은 문헌이나 구전 자료 모두 일치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문헌 설화보다 구전 설화 쪽이 더 다채롭고 풍부한 전승(傳承)을 보인다. 특히, 도술(道術)을 통한 능력의 발휘와 죽을 때의 신이성(神異性) 등이 구전 설화에 두드러지는데, 현재 구전되는 「김덕령 설화」는 대부분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문헌 설화 중 『동야휘집』에는 「추노설화(推奴說話)」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후대에 편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용

구전과 문헌 자료를 종합하여 「김덕령 설화」를 정리해 보면 출생, 용력 발휘 및 득공, 억울한 죽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억울한 죽음에 관한 내용은 전국적으로 전승되며,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광주 및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채록(採錄)된다.

출생

출생 과정은 풍수설(風水說)과 관련되어 있는데, 김덕령의 비범성(非凡性)은 명당(明堂)의 기운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지사가 보아 둔 땅을 김덕령의 부모가 몰래 조상의 묘지로 썼지만, 묘지 쓰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김덕령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는 구전 설화에만 나타난다.

용력

김덕령의 용력은 대단하여, 손으로 호랑이를 잡거나 거친 말을 길들일 정도였다. 또한 김덕령은 100근의 철퇴(鐵槌)를 양 허리에 차고 다녔으며, 왜장(倭將)은 김덕령의 화상(畫像)만 보고도 두려워서 군대를 철수했다고 한다. 이는 구전 설화와 문헌 설화에 모두 나타난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의 복상(服喪)을 입게 되어 어머니의 만류로 출전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싸움 구경을 나갔다가, 왜장의 진중(陣中)에 들어가 도술로 그들을 두렵게 하여 물러나게 한다. 이 과정에서 김덕령은 충과 효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경험한다. 이 부분은 구전 설화에 나타난다.

김덕령의 용력에 관한 내용은 「오뉘 힘내기 전설」과 결부되기도 한다. 김덕령은 씨름판에서 이름을 날렸는데, 김덕령의 누이는 그가 자신의 힘을 자만하는 것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김덕령의 누이는 남장하여 씨름판에 나타나 김덕령을 이긴다. 이를 알게 된 김덕령은 누이와 목숨을 건 시합을 하게 된다. 김덕령이 무등산을 갔다 오는 사이에 누이는 베를 짜 옷을 짓기로 하는데, 누이는 김덕령에게 일부러 져 주지만 김덕령은 누이가 시합에 졌다며 누이를 죽인다. 각편에 따라 김덕령의 이와 같은 경솔함이 뒷날 그의 비극적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죽음

문헌 설화에서는 김덕령이 이몽학(李夢鶴)의 난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게 된 것으로 기록하여, 김덕령의 실제 행적과 유사한 면모가 나타난다. 그러나 구전 설화에서는 이와 다르게 나타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정(朝廷)에서는 김덕령이 용력이 있으면서도 출전하지 않았다고 하며, 김덕령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고 하나 죽일 수가 없었다. 이때 김덕령이 “나를 죽이려면 ‘만고 충신 효자 김덕령’이란 비를 써 달라.”라고 요구한다.

조정에서 김덕령의 요구대로 하자, 김덕령은 “내 다리 아래의 비늘을 뜯고 그곳을 세 번 때리면 죽는다.”라고 알려 준 후 스스로 죽임을 당했다. 죽은 뒤 조정에서는 비문(碑文)의 글자를 지우려고 하였지만, 글자가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또렷해지자 글자를 그냥 두었다 한다. 구전 설화의 향유층(享有層)은 김덕령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동정(同情)하면서, 실제로 김덕령이 가졌던 용력을 과장하고 도술의 차원으로까지 확대하며, 그의 죽음도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미화한다.

의의 및 평가

「김덕령 설화」는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전승되는 인물전설 중의 하나이며, 역사와 설화의 관계를 여러 가지 변이를 통해 다양하게 보여 주고 있다. 용력이 뛰어난 김덕령과 같은 인물이 지배층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임진왜란에서 패배하지 않았으리라는 민중의 보상 심리와 비판의식이 나타난다.

김덕령의 다양한 모습은 소설 「임진록(壬辰錄)」의 여러 이본(異本)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임진록」의 김덕령은 문헌 설화보다 구전 설화와 더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전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김덕령 설화」에서 김덕령은 「아기장수 전설」로 대변되는 좌절당한 영웅의 모습을 지닐 뿐만 아니라 민족적 영웅의 면모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설화는 일종의 민간 영웅담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김덕령 설화」는 「임진록」, 「임경업전(林慶業傳)」 등과 같은 역사 군담 소설(歷史軍談小說)의 형성에도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풍암집화(楓巖輯話)』
『동야휘집(東野彙輯)』
『임진록(壬辰錄)』
『대동기문(大東奇聞)』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단행본

조동일, 「임진록에 나타난 김덕령」(『상산 이재수박사환력기념논문집』, 형설출판사, 1972)
임철호, 『임진록연구』(정음사, 1986)
강현모, 『장수설화의 구조와 의미』(역락, 2004)

논문

임철호, 「김덕령설화 연구」(『한국언어문학』 22, 한국언어문학회, 1983)
표인주, 「김덕령 설화의 기호적 의미와 전승집단의 인식」(『석당논총』 34,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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