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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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쇠로 만든 생활도구. 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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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놋쇠로 만든 생활도구. 유기.
내용

놋쇠는 구리에다 주석이나 아연·니켈을 섞은 합금으로 청동기시대의 청동도 놋쇠의 일종이다.

즉 서기전 7세기경부터 사용되었던 놋쇠는 청동으로, 거울·동탁·동검 등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이 청동기시대는 2세기경에 끝이 나고, 그 뒤 7세기경에 페르시아와 이란 등지에서 발달된 유기제작기술이 당나라에 유입되었으며, 그 영향을 받은 신라에서는 8세기경에 전문적으로 놋그릇을 다루는 철유전(鐵鍮典)이라는 상설기구를 설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1010년 현종 때에 흥천사(興天寺) 범종과, 1223년 고종 때에 화병을 만들어 흥복사(興福寺)에 두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각종 생활용기가 놋쇠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고려시대 평민의 무덤에서도 놋쇠숟가락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식기로서도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의 놋그릇은 식기 이외에 농악기나 각종 불구(佛具)에 속하는 종·금고(金鼓)·정병(淨甁)·향로·금동탑·사리함·제기 등이 제작되어 높은 수준의 금속공예미를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유기는 동체가 얇고 질긴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국가에서 동을 채굴하여 유기의 생산을 장려하였다. ≪경국대전≫의 공조(工曹)편을 보면, 유기를 전담하여 놋그릇을 생산하는 유장(鍮匠)이 국가공무원으로서 본조(本曹)와 내수사(內需司)·상의원(尙衣院)에 각각 소속되어 있었으며, 지방관아의 공방에도 유기공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이밖에도 민간인 유기장들이 많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는 놋점 또는 놋전이라고 불리는 유기점이 따로 있어 각종 식기류와 풍물류의 놋그릇을 판매하였다. 6·25 전까지는 개성·안성을 비롯하여 김천·남원·운봉·전주·홍성·박천·평양·사리원·정주·서울 등지에서 놋그릇을 많이 만들었으나, 6·25 이후 연탄이 사용되면서 연탄가스에 변질되기 쉬운 놋쇠의 성질 때문에 차츰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현재 우리 나라에 유존하고 있는 놋그릇 제작의 방법은 경기도 안성지방에서 만들었던 주물제작법(鑄物製作法), 평안북도 정주 납청(納淸)지방에서 만들었던 방짜제작법[方字製作法], 전라남도 순천지방에서 만들고 있는 반방짜제작법[半方字製作法]이 있다.

주물제작법이란 구리에다 주석이나 아연을 7 대 3의 비율로 혼합한 쇳물을 녹여, 그릇의 형태를 만든 틀에다 부어넣은 다음 다듬고 광을 내어 완성하는 기법으로, 가장 쉽게 놋그릇을 만드는 방법이다.

주물유기로 가장 유명한 곳은 개성과 안성지방인데, 안성의 유기는 조형미가 아름다워 ‘안성맞춤’이라는 속담이 나올 만큼 품질이 좋았다.

방짜제작법이란 일반적으로 쇳물을 녹여 바대기라 불리는 바둑알처럼 둥굴납작한 쇳덩이를 만들어, 11인이 한조가 되어 불에 달구어가면서 두들겨 그릇의 형태를 이루는 방법이다.

방짜는 유석에 구리와 주석 이외에 다른 물질이 들어가면 두들겨 기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깨어지기 때문에 절대로 안된다. 방짜를 일명 ‘양대(良大)’라고도 하는데 북한의 납청지방에서 쓰는 말이다. 평야지방에서는 방짜유기로 된 징·꽹과리 등이 성행하였고, 북한의 산간지방에서는 놋상·놋동이·놋식기 등이 성행하였다.

또 순천지방에는 옥성기라는 놋그릇 형태가 있는데, 이것은 일명 궁구름옥성기 또는 옥바리라고 하며 근래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반방짜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릇의 절반쯤은 손쉬운 주물식으로 만들고 그릇의 끝부분은 집게로 집어가면서 오목하게 두드리거나 짓눌러 만드는 방법의 그릇이다. 일반적으로 북한 산간지방의 놋그릇은 비교적 그릇이 크고 거칠며, 남한의 평야지방의 놋그릇은 작고 아담하며 섬세하다.

놋그릇의 종류로는 크게 식기류·혼사용구·제사용구·불기류·난방용구·등잔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식기류는 숟가락·젓가락 외에 칠첩반상기(七─飯床器)·구첩반상기(九─飯床器)가 있다. 칠첩반상기란 그릇의 종류가 모두 뚜껑까지 32개가 한벌로 된 밥상의 식기를 말한다.

혼사용 유기로는 식기대접 두벌, 숟가락·젓가락 두벌, 사랑요강·안방요강, 큰 세숫대야(어린애 출산용), 작은 세숫대야 등이 있으며, 제사용 놋그릇으로는 구삼벌·제주발·갱기·수저·제잔·잔대·탕그릇·적틀·편틀·포틀·약기·제종지·제접시·모사기·퇴주그릇·주전자 등이 있다.

불기의 종류로는 대·소 불기, 놋동이·향로·촛대·향합·바라·범종·옥수기 등이 있다. 난방용구로는 화로·부젓가락·부삽, 등잔류로는 유경등잔·나비촛대 등이 있다.

이들 놋그릇은 시간이 지나면 푸른 녹청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이를 깨끗하게 닦는 것은 여인들의 일과이자 풍속으로, 암키와를 곱게 빻은 것을 수세미에 묻혀 윤이 반질반질하게 날 때까지 닦았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성종실록』
『숙종실록』
『경국대전』(법제처 역주, 일지사, 1981)
『안성유기의 전래』(김종태, 안성군청, 1982)
『유기장』(김종태, 문화재관리국,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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