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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사헌(大司憲)

    조선시대사제도

     고려·조선시대 사헌부의 종2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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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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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
    도헌(都憲)
    분야
    조선시대사
    유형
    제도
    성격
    관직
    시행시기
    고려, 조선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조선시대 사헌부의 종2품 관직.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도헌(都憲)이라고도 하였다. 정원은 1인이다. 사헌부는 시정(時政)을 논집(論執)하고 백관을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원억(寃抑)을 펴며, 남위(濫僞)를 금하는 일 등을 맡아보던 관서로서, 고려시대는 국초에 사헌대(司憲臺)라고 불렀다.
    그 뒤 어사대·금오대(金吾臺)·감찰사로 여러 번 명칭이 바뀌다가 1298년(충렬왕 24) 1월 충선왕이 즉위하여 관제를 개혁할 때 비로소 사헌부로 고쳤으나, 곧 원나라의 압력으로 충렬왕이 복위하게 되자 감찰사로 환원되었다.
    1308년 6월 충선왕이 다시 실권을 잡으면서 감찰사를 또 사헌부로 고치고 대부(大夫)를 대사헌으로 고쳤다. 이것이 대사헌의 명칭이 기록에 나타나는 시초이다.
    이 때 마련된 사헌부의 관제는 대사헌 다음에 집의(執義)·장령(掌令)·지평(持平)·규정으로 되어 있어 『경국대전』의 직제와 거의 같았으나, 다만 감찰에 해당하는 규정(糾正)이 들어 있었던 것이 달랐을 뿐이다.
    조선 태조의 신반관제(新頒官制)에서 사헌부는 대체로 1369년(공민왕 18)의 관제를 습용(襲用)한 것으로서, 역시 대사헌 다음에는 중승(中丞)·겸중승(兼中丞)·시사(侍史)·잡단(雜端)·감찰이 있었으며, 그 뒤 이것이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대사헌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명칭과 관품은 물론 기능에 있어서도 아무 변동 없이 『대전회통』까지 이어졌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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