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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학회(大韓學會)

근대사단체

 1908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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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08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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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재일본한국유학생 단체인 대한유학생회가 낙동친목회(洛東親睦會)·호남학회(湖南學會)와 함께 통합해 1908년 1월 대한학회를 설립하였다.
태극학회(太極學會) 등 일부 단체가 미통합 되기는 했으나 그 회원들이 대한학회의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한유학생회보다는 통합적인 성격이 보다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08년 7월 경에는 267명의 회원 가운데 태극학회의 회원수가 5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설립목적
이 회는 재일본한국유학생단체를 대표해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지덕을 계발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권회복을 목표로 한 정치단체였다. 이 회는 국내에 찬성회(贊成會)를 조직해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회의 운영을 꾀하였으며, 편찬부·교육부·토론부·운동부·교제부를 두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기능과 역할
주요 활동으로는 월보의 간행을 통한 구국계몽운동을 들 수 있다. 월보는 1908년 2월부터 그 해 11월까지 총 9호를 발행하였다. 김기환(金淇驩)과 유승흠(柳承欽)에 의해 편집된 월보는 서양문물을 소개하는 문화계몽지였으며, 신교육구국론과 실업구국론을 주장하는 민족지였다.
아울러 피터대제(彼得大帝)·콜럼버스(哥崙布)·아리스토텔레스(亞里斯多德) 등 서양인 전기 뿐 아니라 「김장군덕령소전(金將軍德齡小傳)」·「정평사문부소사(鄭評事文孚小史)」 등 영웅전을 싣고 있다.
한편, 이 회에서는 회원 윤정하(尹定夏) 등이 편찬한 『상업계』라는 잡지를 간행하였다. 또 채기두(蔡基斗)·한상우(韓相愚)가 번역한 『법률경제사의통해(法律經濟辭義通解)』를 출판해 보급하기도 하였다.
그밖에 전공과목에 대한 토론회와 한국의 장래에 대한 연설회·웅변회 그리고 신입생 환영회·졸업 축하회·운동회, 고종의 만수절 축하회(萬壽節祝賀會)·건원절 축하회(乾元節祝賀會) 등의 행사를 통해 회원간에 화목을 도모하는 것은 물론 민족운동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설립 이후 유학생 통합단체로서의 구실을 수행하던 이 회는 1909년 1월 태극학회·공수학회(共修學會)·연학회(硏學會) 등과 함께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로 통합함에 따라 비로소 유학생 단체의 총통합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 회에서 활동한 주요 인물로는 회장을 역임한 최린(崔麟)·이은우(李恩雨)와 5부의 부장을 역임한 채기두·김기환·최석하(崔錫夏)·어윤빈(魚允斌)·고의환(高宜煥)·이창환(李昌煥)·오정선(吳政善), 그리고 제2대 편찬부장과 월보의 편집을 맡았던 유승흠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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