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역양(嶧陽). 정인홍(鄭仁弘)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대북파인 정인홍을 위하여 1601년 생원으로서 소를 올려 처사 최영경(崔永慶)의 죽음에 정철(鄭澈)과 성혼(成渾)이 주동이 되었다 하여 그들을 논척하였다.
이듬해 송라찰방(松羅察訪)이 되었고, 1615년(광해군 7) 김천찰방(金泉察訪)으로서 당시 대북파들의 횡행과 왕의 실책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자, 이를 비판하던 정온(鄭蘊) 등의 편에 서서 활동하다가 원래 정인홍의 문인으로 스승을 배반하였다는 죄로 삭탈관직 당하였다.
저서로는『역양집(嶧陽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