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순 ()

개신교
인물
일제강점기 대동동지회 회장,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1년(고종 28) 3월
사망 연도
1933년 8월 8일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
정의
일제강점기 대동동지회 회장,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일본 조합교회 전도사 및 부협의회 의원, 언론인으로 일제의 식민지배에 협력한 ‘직업적인 친일분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1년에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1909년 서북·관서·해서지방 출신자들이 조직한 계몽운동단체 서북학회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서북학회 기관지 『서북학회월보』에 1909년 1월부터 「국가론의 개요」 등의 글을 6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일제측 자료(『조선신사록』)에 의하면, 1907년 『대한매일신보』 기자로 입사하여 1910년 3월에 퇴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는다.

1909년 4월 일본인이 창간한 평양신문사에 입사하여 편집부장을 맡았고, 1910년 11월에 보성학교 법과를 졸업하였다. 평양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식민지 선교를 목표로 평양 기성(箕城)교회를 세운 일본조합기독교회의 와다세[渡賴常吉]와 교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와다세의 영향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 1914년 12월 일본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대학 기독교신학과를 졸업하였다. 도지샤대학에서 조합교회 전도사 수업을 받고 귀국한 후 1915년 부터 기성교회의 전도사로 평남지역 포교에 열중하면서 일제의 식민정책에 적극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노골적인 친일활동을 전개하여 국민협회(國民協會)의 민원식 등과 함께 당시 대표적인 ‘직업적인 친일분자’로 불렸다. 1917년 4월에는 정미소를 개업하여 개인사업도 병행하였다.

1919년 8월부터 1921년까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빈번하게 면담하면서 식민정책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였다. 조선총독과의 면담자리에서 민중에 대한 염탐을 강화하고 친일파를 육성할 것을 건의하였다. 조선총독부의 비호와 후원으로 도쿄를 드나들며 정계·재계의 거물급과 접촉하였고, 일본 수상 하라 다카시[原敬]에게는 동화정책을 강화할 것과 독립반대를 강변하였다. 일본 제일은행장인 시부자와 에이치[澁澤榮一]를 만나 조선인의 ‘교화’를 위한 자금 원조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1919년 4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일본조합교회 조선순회교사인 다카하시[高橋鷹藏]와 황주교회(黃州敎會) 전도사 혼마[本間淸] 등과 함께 배역(排逆)유세단을 조직하고 황해도·평안남도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1920년 10월에는 평안남도지사 시노다[篠田治策]의 사주와 지원으로 나일봉, 김흥건 등과 함께 일본과 조선 양민족의 공존공영을 표방한 친일단체 대동동지회(大東同志會)를 창립하고 회장이 되었다. 기관지로 『공영(共榮)』을 발간하고 강연회를 개최하여 친일 여론 조성과 정책 선전에 앞장섰다. 또한 대동동지회 세력 확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생을 파견하기 위한 활동과 재단설립을 추진하였다.

1920년 11월 일제가 친일 협력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실시한 지방의회 선거에서 평양부협의회 의원에 당선되었고, 1923년과 1926년에 재차 당선되었다. 1921년에는 도지사 시노[篠田]를 위한 친일강연회와 사이토 총독이 참석한 활동사진회를 개최하였다. 선우순의 친일행위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암살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식민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여러 단체의 수장으로 활약하였다.

1921년 적극적 친일 활동을 인정받아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참의가 되었다. 이러한 위세를 이용해, 1922년 2월 독립단 안주(安州) 지단장 홍이도(洪彛道) 외 수명의 가출옥을 미끼로 금품을 뜯어냈다가 사기죄로 피소되었지만, 조선총독부의 비호를 받아 불기소처분 되었다. 1927년 6월 정7위에 서위되었다. 1927년 중추원 개선에서 참의로 유임되었고, 1933년 사망때까지 총 13년간 중추원 참의로 지냈다.

선우순의 일제강점기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5·9·13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8: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379~397)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왜정시대인물사료(倭政時代人物史料)』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8(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사』(강동진, 한길사, 1980)
『朝鮮紳士錄』(朝鮮紳士錄刊行會 編, 1931)
「『공영』을 통해 본 대동동지회의 활동과 친일논리」(박종린, 『역사와 현실』 69, 2008)
집필자
이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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