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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두환(孫斗煥)

      북한인물

       일제강점기 조선민족전선연맹 이사, 민족자주연맹 정치위원 사회주의운동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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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민족전선연맹 이사, 민족자주연맹 정치위원 사회주의운동가.정치인.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황해도 은율 출신. 1916년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에 재학중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뒤 임시의정원 의원과 군법국장을 맡았다. 그는 준비론에 입각한 임시정부 노선과 임시의정원 운영실태를 비판하고 사회주의에 입각한 민족해방론을 주장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20년 상해에서 사회주의연구회를 조직하였다. 반 독립운동가를 색출, 제거하기 위해 소독단(消毒團)을 조직, 단장을 맡았고, 1922년 12월 상해에 거주하는 교민들의 친목도모를 위해 한인구락부를 조직하였고, 1924년 12월 임시정부 경무국장에 선임되었다. 1925년 경 광주(廣州)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1926년 유월(留粤) 한국혁명동지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고, 당시 의열단(義烈團) 단원의 황포군관학교 입학을 지원하였다. 1927년 황포군관학교 본부 부관으로 재직하다가 4월 장제스(蔣介石)의 반공쿠데타를 계기로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 제1차 국공합작 분열 때 장제스를 지지함으로써 소련에서 추방되었다.
      1933년 12월 하남성(河南省)낙양(洛陽)에 위치한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제7분교에 한인특별반이 설치되자 입학생 모집활동, 특무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6년 여름 강소성(江蘇省) 성도인 남경(南京)의 한족회 회원으로 통일전선운동에 참여하였다.
      1937년 12월 조선민족전선연맹 이사를 맡았고, 1938년 1월 대한광복운동단체연합회와의 통일전선을 이루기 위한 교섭대표로 활동을 하였다. 1943년 2월사천성(四川省) 도시의 하나인 중경(重慶)에서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과 선전부장에 선임되었다. 민족혁명당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면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뽑혔다.
      또한 ‘대한광복군 9개 행동준승’ 수정을 촉구하기 위한 위원, 민주혁명당 원내당단주임(院內黨團主任)으로 선임되었다. 1944년 임시의정원 의원, 선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5년 귀국한 후 신한민주당에 참여하였고, 1947년 5월 근로인민당에 가입하여 중앙감찰위원장을 지냈다. 또 좌우합작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어 여운형(呂運亨)·김규식(金奎植) 등과 좌우합작 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2월 민족자주연맹 정치위원이 되었다.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였고, 같은 해 8월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 인민대표자대회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01년)
      심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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