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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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한정당 괴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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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활
개념
강이나 바닷가의 돌밭 또는 산중에서 기이하게 생긴 돌을 수집하여 그 묘취를 즐기는 취미. 수석.
이칭
이칭
수석(水石)
내용 요약

수석은 강이나 바닷가의 돌밭 또는 산중에서 기이하게 생긴 돌을 수집하여 그 묘취를 즐기는 취미이다. 자그마한 자연석으로 산수미·회화적인 색채와 무늬의 조화가 중요하다. 또 추상미를 발산하는 것으로 정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수석은 질·색·형·곡이 중요한데 모든 조건을 갖춘 돌을 찾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수석 산지는 100여 군데로 산수석을 가장 으뜸으로 여기고 있다. 조선 시대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산수석의 멋을 가르치고 있다. 수석은 비어 있는 듯한 데서 실제를 상상할 때 수석의 진수와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목차
정의
강이나 바닷가의 돌밭 또는 산중에서 기이하게 생긴 돌을 수집하여 그 묘취를 즐기는 취미. 수석.
내용

‘水石’이라고도 쓴다. 수석이란 두 손으로 들 정도 이하의 작은 자연석으로 산수미의 경치가 축소되어 있고 기묘함을 나타내고 회화적인 색채와 무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 환상적인 추상미를 발산하는 것으로서 시정이 함축되어 있으며 정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수석은 큰 정원석과는 구별되는 자그마한 돌로 천연 그대로여야 하며 주로 실내에서 감상한다.

이 취미의 바탕은 대자연은 곧 나요 나는 대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자연과 인간과의 주1에 도달하여 자연의 깊은 이치를 갖가지로 이해하려는 동양적 사상 감정에 있다. 돌을 재료로 삼은 보석 · 화석 · 진기석, 가공한 미석과 석공예 등은 전통적인 수석의 경지와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다.

자연의 산수미를 사랑하고 우주의 분신이 되고자 하는 간절함이 그 아름다운 자연을 항상 몸 가까이에서 즐겨 누리려는 욕망으로 발전하였다. 이윽고는 웅대 · 장중한 산수경을 뜰 안에 축소, 조성하는 가산(假山)을 창조하였다.

가산을 조성하는 중에 기기절묘한 암석도 배열하다가 다시금 하나의 작은 돌에 산수미가 보다 더 작게 축소되어 있는 형상을 발견하였다. 이를 서재의 책상 위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경지를 맞게 되었다. 즉, 자그마한 돌 가운데에도 자연경치가 신비롭게 축소되어 있으며, 온갖 만상이 응축되어 있음을 찾아낸 것이 수석의 발견이다.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뜰안에 조성하는 축경조원(縮景造園)을 일본에 가르친 사람이 백제의 주2이다. 이로써 일본에서도 주3과 수석의 시초를 싹트게 하였다. 이 축경조원의 형식은 신라시대의 옛 자취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곳곳에서 선인들이 꾸며놓은 그러한 자취가 발견되고 있다.

수석에 대한 옛 기록은 약 3,000년 전에 펴냈다는 중국 최고(最古) 지리서인 『서경』의 우공편(禹貢篇)이나 주나라 초기의 『시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뒤의 당 · 송 · 명나라에서 열렬히 애석(愛石)해온 기록이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전해져온 우리나라의 애석기풍은, 첫째 토속적인 배석신앙(拜石信仰)에 의한 자생적인 애석열, 둘째 산서석을 주체로 한 중국의 영향, 셋째 불교정신의 애석풍으로 번졌다.

아득한 예로부터 기고(奇古)하며 신비한 암석 앞에 엎드려 부귀와 번영을 기구하고 또는 아들 낳기를 간구하는 등의 가지가지 절절한 소원을 비는 의식이 민중 속에 강한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이런 배석신앙은 오늘에도 잔존하고 있다.

이 습속은 돌과 바위와의 친화력을 가지게 하여 진귀한 돌이라면 신령스러운 것으로서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기풍이 민중 속에 퍼지게 되었다. 민화에서 괴석이 그려져 있는 것을 많이 구경할 수 있으며, 돌은 굳고 곧은 덕을 품고 있다 하여 덕성(절개)의 상징으로도 삼았다.

우리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특히 당 · 송대에 걸친 저명 문인 · 서화가들의 산수석을 애완하는 풍류가 짙게 전해졌다. 조선시대 강희안(姜希顔)의 저작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은 수석의 보배로운 고전으로서 산수석의 참다운 멋을 가르치고 있다. 그 뒤 이형상(李衡祥)이 누린 자그마한 전래석과 그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음양의 조화를 이룬 독특한 형태미의 산수석으로 정립되어 있는데 현재 비원에는 그러한 독창적인 형상을 지닌 전래정석(傳來庭石)들이 많이 남아 있다. 서울의 운현궁 자리와 봉원사에서도 그런 궁중석 형태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정약용(丁若鏞) · 김정희(金正喜) · 이하응(李昰應) 등 조선시대의 수많은 문인 · 서화가들이 애석했던 기록과 자취가 널리 남아 있다. 진귀한 돌을 흠모하고 애완하는 가운데 그려낸 옛 선비들의 괴석도(怪石圖)가 전국에 널리 산재해 있는 것만 보아도 우리의 열성어린 애석기풍을 넉넉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음, 불교의 선사상(禪思想)에 의하여 돌을 애완한 자취도 많다. 당나라에서 『화엄경』을 배워온 신라의 승려 승전법사(勝詮法師)는 80개의 돌무리를 향하여 불경을 개강하면서 돌을 아꼈다. 통영 앞 바다의 연화도(蓮花島)에는 400년 전에 여승 연화도인이 모셔놓은 둥근 돌이 현존하고 있다.

하동군 칠불암(七佛庵) 경내에 옛 승려들이 아낀 괴석들이 늘어져 있으며, 승려 추월(秋月)이 500년 전에 아꼈던 제수마석(除睡魔石)이라 불리는 둥근 돌이 쌍계사 주지실에 보존되어 있다. 해남 대흥사에는 수석은 아니더라도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아꼈던 수정석(水晶石)이 남아 있다.

예로부터 많은 스님들이 선석(禪石)이라 하여 기품있는 돌을 애완했던 자취가 널리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옛 선비들이 돌을 사랑하였던 것은 자연을 우러르는 정감과 대자연이 인간에게 교시하는 진리를 아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작위(作爲)와 생활의 번폐스러움을 뿌리치고서 자연의 품 속에 가장 참된 평화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슴 속에서 속기(俗氣)를 물리치고 마음과 돌 사이에 교감(대화)을 가짐으로써 사상적으로 동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고고한 품성과 깊은 학문은 자연 이외의 주4는 합당하지 않았다. 정감이 풍부한 예술가적 기질로서 열심히 한적(閑適)을 즐기기에는 오직 자연미를 찾는 데에 합당했던 것이다.

그들의 꿋꿋한 절개와 고상한 인품은 부귀한 자의 허망된 작위를 냉소했고, 명예로운 관직을 성가시게 여겨 쾌히 내던지고 야(野)에 은거할 줄 아는 지극히 인생을 사랑한 사람들이다.

수석의 형식을 나누면 다음과 같다.

① 산수경석(山水景石, 山水石) : 한 개의 작은 돌에 산수 경치의 어떤 양상이 상징적으로 축소되어 나타나 있는 돌이다. 즉, 깊은 골짜기나 낭떠러지, 하나의 산봉우리를 이룬 것, 여러 개의 봉우리가 산맥으로 이루어진 것 등이 있다. 또 폭포와 계류, 호수와 평야, 눈 덮인 광경 등 가지가지 산수미의 형상이 돌에 응축되어진 것인데, 이러한 것을 산형석 · 호수석 · 평원석 · 도형석 따위의 명칭으로 분류한다.

② 물형석(物形石) : 아무렇게나 생긴 돌이 어쩌면 무슨 짐승이나 곤충 · 새 · 사람 또는 탑같은 옛 유물 등 온갖 삼라만상의 형상을 닮은 것 같아 오래 볼수록 더욱 그러한 영상을 짙게 풍기는 돌이다. 형태가 우스꽝스럽고 유머가 있으며 아름다운 동경과 추억을 느끼게 하는 돌이어야 하는데 작을수록 묘취가 있다.

③ 무늬석 : 사람 · 고목 · 새 · 짐승 · 꽃 · 수풀 · 달 · 별 등 온갖 자연 만상이 무늬로써 뚜렷이 아로새겨진 돌이다. 무늬는 색채를 지닐수록 좋다. 회화적이고 시정(詩情)이 넘쳐야 하며 한편 추상미를 찾기도 한다.

④ 색채석(色彩石) : 우아하고 화려한 색깔이 자연스럽게 돋보이는 돌이다. 색채가 명료하지 못하다든지 천박스러우면 가치가 없으며 기품 있는 고상한 색깔이 영롱해야 한다. 이 색채석에 기묘한 무늬가 들어 있으면 색채 무늬를 겸비한 수석이다.

⑤ 추상석(抽象石) : 무엇을 닮았다 하는 개념과 사실성에서 벗어나 형언 못할 강렬한 인상과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추상성을 지닌 돌이다. 이 돌은 축경미(縮景美)로서의 의미가 없으며, 예술조각미적인 심미안으로 보게 된다.

⑥ 전래석(傳來石) : 옛 선인들이 애완하였던 돌이 현재까지 전래되어 보존된 돌이다. 전래석은 유래가 있고 명인의 손길을 거쳐온 근거가 있어야 가치가 있으며 그러할 때에 생김새가 못났어도 무척 보배롭게 여기게 된다.

수석의 조건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인공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작은 돌로서, ① 석질이 견고해야 한다. 석질이 약하면 영구적이고 불변하다는 수석의 본질이 무너지므로 푸석돌은 하품(下品)으로 친다.

② 색에 있어서는 주밀한 진흑색을 으뜸으로 하여 무게 있고 점잖은 청색 · 감색 · 녹색 등 색조의 중후감이 있는 돌이어야 한다. 뿌옇다든지 힘이 없고 천해보이는 석색은 하품이다. 석질이 좋아야 색감도 출중해지는 상호보완 관계가 있다.

③ 어떤 수석 형태이든 구도상 조화롭게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며 축경미의 조건과 자연미의 요소가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

④ 누구에게든지 공감과 감탄을 일으킬 수 있는 강한 개성과 돌의 표정이 살아 있어야 한다.

⑤ 기나긴 세월에 만고풍상을 겪어온 창연한 시대감이 돋보이는 적정(寂靜)한 고태(古態)의 멋이 그윽하게 살아 있을수록 좋으며, 이것은 수석의 밑바탕에 흐르는 정신[石心]인 것이다. 이를 중시하여 예로부터 노태수석(老苔壽石) · 수석만년(壽石萬年) · 수석노불(壽石老佛)이라 하였다.

⑥ 균형이 잡혀야 할 것은 물론 선(線)의 흐름이 유연해야 하며, 변화 있는 주름 굴곡과 표면이 개성적일수록 좋다. 깨어진 듯한 자국이 있으면 하품이다.

이처럼 수석이 지녀야 할 조건을 고루 갖추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질 · 색 · 형 · 곡의 4대 요소 중에서 어느 쪽이든 장점을 내포하고 있으면 취택한다. 형이 미흡하지만 색질이 뛰어났다든지 색질이 모자라지만 형과 곡이 우수하면 좋게 받아들여야 한다.

수석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생각하면서 탐석행(探石行)을 시작한다. 수석이 나오는 곳은 일반적으로 강의 중류지역의 돌밭이 위주가 되며, 다음은 바닷가의 우묵하게 굽어들어간 곡[灣]에 널리 있는 돌밭이다.

그러나 아무데서나 탐석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수석감이 산출되는 지역이 따로 있는 법이다. 그래서 수석 산지에 대한 예비 지식을 익히고 탐석해야 하며 그러는 사이에 새로운 산지를 발견하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흙 속에서 기묘한 돌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수석 산지는 100여 군데에 걸쳐 산재해 있다.

댐공사로 인하여 과거에 명석감이 쏟아져 나왔던 남한강 일대와 금강 상류는 수몰되어 지금은 탐석의 성과가 거의 없다. 특히, 문경의 농암천, 울산 일대, 경주의 강줄기, 보성의 제석산 토중석, 고성의 토중석, 통영군의 섬들, 지리산의 토중석, 청송의 꽃무늬석, 영덕의 오십천과 양양천 · 매화천, 파계사의 토중석 등이 있다.

특히 제주도 해안 일대의 돌밭이 유명하며 그 밖에 수많은 수석 산지들이 있는데, 지금은 열띤 탐석에 의하여 수석감이 귀한 형편이다. 앞으로 남해와 서해 일원의 섬들에서 좋은 수석 산지가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수석산지는 암석층의 분포와 관계가 깊지만 지질 연구에 의한 수석 산지 탐색은 어긋나는 점이 많은데 이것은 수석이 갖추어야 할 특징 때문이다.

탐석을 해왔으면 흙때 · 물때와 끼인 모래알 따위를 말끔히 닦아내어 수석 본연이 지닌 때깔과 자연미를 살려야 한다. 다음에는 연출 배열이 필요하다. 돌의 형태에 적합하도록 좌대조각(나무받침)을 정교하게 제작하여 돌을 받쳐놓는 경우는 대개 물형석 · 무늬석 · 추상석 등에 합당하다.

또, 수반(水盤)을 주로 이용하는 산수석은 수반에 해맑은 모래를 깔고 알맞은 위치에 자리잡아 산수경정(山水景情)이 돋보이게 한다. 수석에 기름칠을 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좌대석(座臺石)은 쓰다듬거나 또는 헝겊으로 닦고 문지르는 사이에 날로 깊은 때깔의 멋을 지니게 된다.

수반석(水盤石)은 감상할 때마다 물을 뿌려서 생동감을 나타내는데 그러는 동안 깊은 색조를 띠기 시작한다. 끊임없는 손질과 또 오랜 세월 사람과 더불어 동반하는 사이에 수석은 저절로 그윽한 고태의 색조를 띠게 되는데 이것을 양석(養石)이라 한다. 이 양석과정을 거치는 감상을 도외시하면 참다운 애석이 되지 못한다.

좌대나 수반에 올려놓은 수석은 다시 화대나 지판에 올려놓아 석격(石格)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때로는 수석 곁에 주5나 초물(草物)을 배열하면 더욱 운치가 있다. 수석의 배열은 넓은 공간을 차지하도록 해서 한유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격조가 생긴다.

탐석은 자연미의 발견이며 감상을 위한 것은 미의 구성으로써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품위있는 수석으로 돋보이느냐 하는 성숙된 심미안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수석에서 주종을 이루는 것이 산수석이며 예로부터 가장 으뜸으로 여겨오고 있다.

산수석에서 산용(山容)의 전체 경치를 한눈으로 다 바라볼 수 있다 하더라도 실상은 주6가 구체적으로 알알이 구성되어 있지 않다. 다만 멀리 떨어져 있는 자연경을 아득하게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산수석은 곧 주7에의 감상으로서 이루어지게 된다.

백낙천(白樂天)이 시문에서 읊기를 “3산 5악의 수백 골짜기와 수천 구렁 따위의 여러 가지가 더할 나위 없이 한 군데로 축소되어 그 가운데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백길이나 되는 것도 한 주먹 안에 들고 천리나 떨어진 경개도 한눈에 들어오니 이것을 앉아서 다 볼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산수석 감상의 요체이다.

수석은 어떤 형상을 단순하게 상징하고 또 구체적인 실상이 생략되어진 상태로 엇비슷이 닮은 신묘함을 느낄 수 있을 때 흥취가 일어난다. 즉, 비어 있는 듯한, 없는 듯한, 부족함이 많은 어수룩한 구석[虛]에서 이상적이고 실제적인 사실로 형상화시켜[實] 상상할 때에 수석의 진수와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수석미』(장준근, 석오출판사, 1979)
주석
주1

생각, 행동, 의지 따위가 완전히 하나가 됨.    우리말샘

주2

백제의 정원사(?~?). 우리나라 조원(造園)의 효시를 이루었다. 특히, 궁궐 및 연못을 조영(造營)하는 수법이 뛰어났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3

분에 화초나 조화 따위를 심어서 자연의 경치처럼 꾸민 것.    우리말샘

주4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취미로 하는 재주나 일.    우리말샘

주5

화초나 나무 따위를 화분에 심어서 줄기나 가지를 보기 좋게 가꿈. 또는 그렇게 가꾼 화초나 나무.    우리말샘

주6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    우리말샘

주7

산수경석 가운데, 멀리 있는 산을 닮은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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