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현종 즉위년) 약방의 어의(御醫)로서 입진(入診)하여 그 공으로 이듬해 금천현감(衿川縣監)에 특별히 임명되었다. 이어서 3품 실직(實職)을 제수받았고, 1661년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가 되었다.
1672년 군관(軍官)으로서 사신 창성군(昌城君) 이필(李泌)을 수행하여 북경(北京)에 가려 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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