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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전(五銖錢)

선사문화유물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 및 백제 유적에서 출토한 중국 한무제(漢武帝) 원수 4년(元狩四年)에 처음으로 주조한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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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 및 백제 유적에서 출토한 중국 한무제(漢武帝) 원수 4년(元狩四年)에 처음으로 주조한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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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초기에는 동전(銅錢)이었으나 후대에 잠시 철전(鐵錢)도 제작하였다. 전한(前漢) 초에는 진대(秦代)의 반량전(半兩錢)을 이어받아 그 무게를 줄인 반량전을 사용했다. 그 후 서기전 186년에는 팔수반량(八銖半兩), 서기전 175년(한 문제 5)에는 사수반량(四銖半兩), 원수 3년(서기전 120)에는 삼수전(三銖錢)을 사용하다가, 이듬해에는 오수전을 주조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오수전은 반량전과 같이 무게의 단위인 수(銖)를 화폐의 이름에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1수는 기장[黍]이나 조[粟] 100립(粒)을 말하는 것으로서 약 650㎎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오수전의 무게는 약 3.25g이 된다. 형태는 원전(圓錢)으로 내부에 네모난 구멍[方孔]이 있으며, 이 구멍 오른쪽에 ‘五(오)’자, 왼쪽에 ‘銖(수)’자가 배치되어 있다.
한대(漢代)의 것으로는 주조시 표면에 생긴 기호에 따라 천상횡문(穿上橫文)·천하횡문오수, 천상반성(穿上半星)·천하반성오수·사각결문오수(四角決文五銖)·사출문오수(四出文五銖) 등이 있다. 또한 둘레[周郭]를 갈아버린 마곽오수전(磨郭五銖錢)·전륜오수(剪輪五銖), 네모난 구멍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잘라낸 형태의 정환전(鋌環錢), 오와 수의 위치가 바뀐 반오수(半五銖 또는 傳形) 등도 있다.
이렇듯 무제 때 발행한 오수전은 서한 말 평제(平帝)의 원시 연간(元始年間)까지 법정화폐로서 모두 280억 개를 주조하였다. 그 뒤 왕망 때에는 폐제개혁(幣制改革)으로 9년부터 22년까지 오수전의 사용이 금지되었다가, 24년에 유현(劉玄)주 02)이 오수를 다시 주조하였다. 40년(광무제 건무 16)에 왕망전(王莽錢)을 폐지하고 오수전을 정식으로 회복시켰으며, 186년(영제 중평 3)에는 사출문오수를 주조하였다. 이 오수전은 중국 화폐 역사상 통용기간이 가장 긴 것으로서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를 거쳐 수대(隋代)에 이르기까지 약 900여 년에 걸쳐 단속적으로 발행·사용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특징
오수전은 그 역사가 오랜 만큼, 형태·크기·무게·자체(字體) 등 형식상의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형식상 변천과정을 보면, ‘오’자는 직선적인 것에서 곡선적인 것으로, ‘수’자는 직각으로 꺾인 것에서 곡선적인 형태로, 자체는 섬세·정치한 문체에서 굵고 조잡한 것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형태는 크고 두꺼운 것에서 얇고 가벼운 것 또는 마곽·전륜·정환의 형태로 변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현황
한반도에서 금속화폐는 철기문화의 유입이나 낙랑문화의 출현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출토지역도 대부분 중국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북부지방에 집중한다. 평양 주변의 낙랑무덤에서 다수 출토하였을 뿐만 아니라, 은율군 운성리, 황주군 선봉리 1호분, 흑교리 등의 움무덤에서도 약간 보인다. 특히 흑교리에서는 서한 후기로 비정되는 천상횡문 오수전이 출토한 바 있다.
그러나 북부지방과는 그 출토빈도나 수량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지만, 남해안지방의 도서 및 해안지역, 호남 및 영남 내륙지역과 한강유역, 동해안지역의 강원도에서도 오수전의 출토 예가 있다. 남한지방에서는 오수전이 10개 지역에서 1,009점 출토하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풍납토성 에서 오수전 1점, 강릉 초당동에서 오수전 2점, 여수 거문도에서 오수전 980점, 창원 다호리유적에서 오수점 3점, 창원 성산에서 오수전 1점, 사천 늑도유적에서 오수전 1점, 경산시 임당동에서 오수전 3점, 영천시 용전리 돌널무덤에서 오수점 3점, 제주시 산지항에서 오수전 4점, 이 밖에도 제주도 출토품으로 전하는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소장의 오수전 11점, 신안 해저침몰선에서 오수전 2점이 발견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중국 한대 금속화폐의 유입은 낙랑군 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한대의 오수전은 출현시기가 명확하여 우리나라의 청동기 후기의 중요한 유물로서 이 시기 연대결정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유입방법은 육상과 해상루트를 통해 유입되었는데, 내륙지역에서 발견된 화폐는 육상루트를 통해서 유입되었고, 해안과 인접한 지역에서 발견된 화폐는 교역로상의 해상루트를 통해 유입되었다. 이러한 금속화폐는 상품거래 수단의 교역 매개물, 위세품, 분묘 부장품, 의례용 등 여러 가지 기능과 용도로 사용되었다. 출토량도 소량이고, 또 당시가 화폐경제 사회가 아니었으므로 화폐로서 유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위세품으로 역할이 컸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남한지역(南韓地域) 출토 한대(漢代) 금속화폐(金屬貨幣)와 그 성격(性格)」(김경칠,『호남고고학보』27,2007)

  • 「남한지역 한대화폐」(지건길,『창산김정기박사회갑기념논총』,1990)

  • 「中國古代的錢幣」(吳榮會,『考古通訊』56·4,1956)

  • 「漢代五銖錢の硏究」(岡內三眞,『朝鮮學報』102,1982)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서기전 119
주02
뒤의 淮陽王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이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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