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925년 10월 왕건(王建)이 후백제 견훤(甄萱)과의 조물성(曹物城) 전투 뒤에 화의를 맺을 때 왕건의 당제(堂弟)로서 후백제에 인질로 보내졌다.
다음 해에 견훤의 조카 진호(眞虎)가 고려에서 죽자 견훤이 옥에 가두었다가 죽이고 고려에 쳐들어왔다. 927년 1월 시신이 고려에 보내지자 왕신의 동생 왕육(王育)이 맞아들였다. 태조는 930년 원당(願堂)으로 안화선원(安和禪院: 뒤의 安和寺)을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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