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보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순군만호부 부만호, 봉천선도원수동지밀직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88년(우왕 14)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사재령(司宰令)|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 부만호|봉천선도원수동지밀직(奉天船都元帥同知密直)
목차
정의
고려후기 순군만호부 부만호, 봉천선도원수동지밀직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왜구가 극성을 부리던 1377년(우왕 3)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로 용진(龍津: 김해 부근)에 내려가 전함 만드는 일을 맡았고, 이어 1382년에도 사재령(司宰令)으로 전함을 만드는 책임자가 되었는데, 이 때 독촉이 아주 심하여 많은 사람들의 원망을 샀다고 한다.

한편, 1388년 1월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 부만호로 있을 때는 당시의 권신인 상만호 염흥방(廉興邦)이 자기의 가노(家奴)인 이광(李光)과 토지문제로 다투다가 이광을 죽인 전 밀직부사 조반(趙胖)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조반을 국가모반죄로 몰아 연행하여 가혹하게 심문하게 하였다.

1388년(우왕 14) 전 밀직부사 조반(趙胖)의 모반(謀叛) 사건을 신문하는데 참여하였다. 당시 조반은 조정에서 전횡을 일삼던 순군상만호(巡軍上萬戶) 염흥방(廉興邦)의 가노(家奴) 이광(李光)이 자기 땅을 빼앗자 그를 죽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염흥방이 조반을 모반죄로 몰아 잡아들여 순군(巡軍)에 가두고, 심하게 신문하였는데, 이때 부만호(副萬戶)로서 도만호(都萬戶) 왕복해(王福海), 부만호 도길부(都吉敷), 위관(委官) 윤진(尹珍)·강회백(姜淮伯)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4월에는 봉천선도원수 동지밀직(奉天船都元帥同知密直)으로서 개경의 서강(西江)에 주둔하여 왜구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본래 시정의 무뢰인으로서, 오로지 우왕의 측근에서 왕의 비위를 잘 맞추어 출세하였기 때문에 우왕이 이성계(李成桂) 일파에게 쫓겨나자 이광보도 옥에 갇혀 장형(杖刑)을 받고 죽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집필자
문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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