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형보(馨甫), 호는 묵헌(默軒). 이백록(李百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李貞)이다. 아버지는 이희신(李羲臣)이며, 어머니는 강세온(姜世溫)의 딸이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이다.
1605년(선조 38)에 비변사가 수령의 재목될 만한 자와 학행의 정예한 자를 천거할 때 수령에 천거되었고, 칠석과제(七夕科製)에 입격(入格)하여 관시(館試)에 부쳐졌다.
160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 ·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때 『선조실록』 편찬에 편수관으로 참여하였고, 1610년(광해군 2)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동지사 정경세(鄭經世)를 따라 염초(焰硝: 박초로 만든 약재)를 사오는 데 공헌하였다 하여 승급되었다.
1617년(광해군 9) 강원 · 경상조도사(江原慶尙調度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백성들을 모집하고 곡식을 납부할 때 노직첩(老職帖)과 추증당상직첩(追贈堂上職帖) 및 추증당상가선실직첩(追贈堂上嘉善實職帖)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데, 공명첩(空名帖)을 더 많이 만들어 곡식 얻을 길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폐비문제에 대하여서는, ‘변란에 대처하는 문제를 적절하게 하는 것이 묘당에 달려 있다’하여 일의 순리를 좇았다. 사과(司果)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