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형조좌랑, 병조정량, 서장관, 강원 · 경상조도사의 종사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형보(馨甫)
묵헌(默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6년(명종 21)
사망 연도
1619년(광해군 11)
본관
덕수(德水, 지금의 황해북도 개풍)
주요 관직
형조좌랑|병조정랑
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좌랑, 병조정량, 서장관, 강원 · 경상조도사의 종사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형보(馨甫), 호는 묵헌(默軒). 이백록(李百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李貞)이다. 아버지는 이희신(李羲臣)이며, 어머니는 강세온(姜世溫)의 딸이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에 비변사가 수령의 재목될 만한 자와 학행의 정예한 자를 천거할 때 수령에 천거되었고, 칠석과제(七夕科製)에 입격(入格)하여 관시(館試)에 부쳐졌다.

160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 ·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때 『선조실록』 편찬에 편수관으로 참여하였고, 1610년(광해군 2)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동지사 정경세(鄭經世)를 따라 염초(焰硝: 박초로 만든 약재)를 사오는 데 공헌하였다 하여 승급되었다.

1617년(광해군 9) 강원 · 경상조도사(江原慶尙調度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백성들을 모집하고 곡식을 납부할 때 노직첩(老職帖)과 추증당상직첩(追贈堂上職帖) 및 추증당상가선실직첩(追贈堂上嘉善實職帖)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데, 공명첩(空名帖)을 더 많이 만들어 곡식 얻을 길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폐비문제에 대하여서는, ‘변란에 대처하는 문제를 적절하게 하는 것이 묘당에 달려 있다’하여 일의 순리를 좇았다. 사과(司果)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장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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