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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3>(李祥昊)

신종교인물

 일제강점기 임경호·이정립 등과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동화교를 창립한 종교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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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이상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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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임경호·이정립 등과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동화교를 창립한 종교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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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호는 청음(靑陰)이다. 1888년(고종 25)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만주와 북경 등을 유랑하다가 28세에 용화동에서 증산교를 알게 되었다.
1919년 차경석(車京石)이 보천교(普天敎)의 60방주를 조직할 때, 중앙 8교령 중의 하나인 서방주(西方主)에 선임되었으며, 보천교 총령원장까지 피임되었으나, 차경석과 뜻이 맞지 않아 탈퇴하였다.
1925년 김형렬(金亨烈)의 미륵불교(彌勒佛敎)로 옮겨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를 집필하였다. 그러나 미륵불교 간부들과도 의견이 맞지 않아, 1928년 임경호(林敬鎬)·이정립(李正立) 등과 함께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동화교(東華敎)를 창립하고 통정(統正)에 올랐다.
1929년에는 동생 이정립과 함께 증산의 언행을 수집하여 『대순전경(大巡典經)』을 간행하였다. 1931년 당시 김제군 백산면 조종리에서 태을교(太乙敎)를 영도하고 있던 고부인(高夫人)주 02)을 맞이하여 동화교와 통합종단을 만들고 대보(大保)에 올랐다. 그러나 이 교단이 일제에 의하여 해산되자, 잠시 고향에 머물다가 1937년 정읍으로 이주하였다.
1943년 서울에서 문정삼·이정립 등과 종교 활동을 목적으로 기업형태의 동아흥산사(東亞興産社)를 설립할 때 고문이 되었다. 이 때 가입한 회원이 1만 4천여 명에 달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이정립·최위석(崔偉錫) 등 145인을 모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대법사를 조직하여 증산교운동을 다시 전개하였다. 1947년 최위석과 헤어져 별파를 만들고 이름을 증산교(뒤에 이정립이 ‘증산교본부’로 바꿈)라 하였다.
1948년 17개의 증산교 교단이 모여 증산교단통정원을 조직할 때 부통교가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 본부를 정하여 1967년 죽을 때까지 증산교 교주로 있었다. 동생 이정립과 함께 『증산천사공사기』를 발행하였고, 『대순전경』을 발행하여 보급함으로써 증산사상의 정립과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大法社
주02
高判禮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김홍철
개정 (2015년)
김홍철(원광대학교 동양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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