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공래(公來), 호는 소농(筱農). 본관은 경주(慶州).
조선 선조 때의 사자관이었던 이해룡(李海龍)의 10대손으로, 벼슬은 부경(副卿)을 지냈다. 집안 대대로 글씨를 가업으로 삼았으며, 덕수궁 대한문(大漢門)의 액서(額書)가 그의 필적이다. 저서로 『진명휘론(進明彙論)』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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