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이징(李澄)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전기 경상좌도병마절도사, 판우군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왕족.   종실.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이징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전기 경상좌도병마절도사, 판우군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왕족.종실.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전주이다. 아버지는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387년에 산원(散員)이 되었고, 이어 낭장·장군 등을 거쳐 원윤(元尹)이 되었으나, 1402년(태종 2)에 불미스런 여자문제로 인하여 순위부에 감금되기도 하였다.
1412년 우군총제가 되었고, 그 해에 삼군설치 이후에는 우일번절제사(右一番節制使)로 별사금제조(別司禁提調)를 겸하였다. 이듬해에는 병마사가 되었는데 적서와 존비·귀천의 구별없이 왕족이라는 특혜로 내린 칙서로 불평을 사기도 하였다.
1414년 도총제 재임 시 진하사(進賀使)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7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거쳐 이듬해는 좌군도총제를 역임하였다. 세종 때에는 중군도총제를 거쳐 경상좌도병마도절제사를 역임하였다.
이어 다시 중군도총제로서 절일사(節日使)의 임무를 띠고 명나라에 다녀온 뒤 유후사(留侯司)로 개성을 거쳐, 황주·평양 등지의 선위사 임무를 수행하였다. 1429년(세종 11) 판좌군부사(判左軍府事)가 되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는 도중에 노루사냥을 한 죄로 외방으로 쫓겨났다가 1431년에 직첩을 다시 받고, 그 해에 판우군부사가 되었다.
이어 판중추부사가 되었다가 1435년에 죽었다. 아버지가 서출이기는 하나 종친인 관계로 최우대를 받으면서 무관의 고위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박정자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