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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오위(五衛) · 내금위(內禁衛) · 겸사복(兼司僕) · 우림위(羽林衛)의 우두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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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오위(五衛) · 내금위(內禁衛) · 겸사복(兼司僕) · 우림위(羽林衛)의 우두머리.
내용

내금위·겸사복·우림위의 금군(禁軍) 3위(衛)는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효종 초에 내삼청(內三廳)으로 고쳐졌다.

내삼청은 모두 여섯 번(番)으로, 이를 좌·우로 나누어 각 별장 아래에 두었는데, 1·2·3번은 좌별장인 용대장(龍大將) 아래에, 4·5·6번은 우별장인 호대장(虎大將) 아래에 두었다. 10인을 1영(領)이라 하고 3영을 1정(正)이라 하였는데, 이 정을 통솔하는 지휘관이 바로 장(將)이었다.

즉, 별장 아래에 장→정→영→군(軍)을 두는 통솔체계였다. 내삼청의 장은 한때 10인으로 증원되기도 하였으나, 1666년(현종 7) 금군별장 휘하에 금군 700인으로 일곱 번을 편성하여 각 번에 장 1인씩을 두어 내금위장 3인, 겸사복장 2인, 우림위장 2인 등 모두 7인이 있었다. 그리고 5위에는 12인의 장이 있었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만기요람(萬機要覽)』
집필자
장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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