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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립당(朝鮮獨立黨)

근대사단체

 1930년대 중국 항저우(杭州)·난징(南京) 등지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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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30년대 중국 항저우(杭州)·난징(南京) 등지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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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일명 독립당(獨立黨). 활동연대는 1934년 전후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기능과 역할
이 당의 주요 활동인원 중 간부로는 이사장에 송병조(宋秉祚), 재무장에 김철(金澈), 내무 겸 총무에 조소앙(趙素昻), 선전에 이상일(李相一), 비서장에 김두봉(金枓奉), 특별대장에 박창세(朴昌世) 등이 있다.
그 밖에 주요 참여인사로는 이치섭(李致燮)·김사집(金思集)·박경순(朴敬淳)·이중환(李中煥)·이창세(李昌世)·조완구(趙琬九)·이시영(李始榮)·차이석(車利錫)·장덕로(張德櫓)·이성용(李星鎔)·박용철(朴容喆)·조상섭(趙尙燮)·선우 혁(鮮于爀)·김양수(金養洙) 등 20여 명에 달하고 있다.
1932년 4월 29일윤봉길의사의 상해(上海)훙커우공원(虹口公園) 의거가 대대적으로 성공하자 일제 군국주의자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30여 요인의 신상파악에 혈안이 되었다.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윤봉길의거(尹奉吉義擧) 이후 항저우로 판공처(辦公處)를 이동, 집무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일본경찰의 감시, 미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난징·항저우·자싱(嘉興) 등지로 은신처를 옮겨 거처를 일정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창호(安昌浩)가 상해 보강리(寶康里) 54호이유필(李裕弼)의 자택에서 잡혀 본국으로 압송되었다.
다음해 3월 이유필도 일본경찰에 잡혀 국내로 압송되어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당시 최종판결문과 중국측 자료에 의거해 보더라도, 이유필이 귀순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동녕(李東寧)·김구(金九)·박찬익(朴贊翊)·엄항섭(嚴恒燮) 등은 자싱으로 갔고, 조소앙·송병조·김철승은 항저우로 피신해 임시정부의 판공처를 개설했으며 김두봉 등은 난징으로 피신하였다.
이에 따라 이 단체는 쑹장(松江)에 중앙당부를 두고 항저우 학사로사금방(學士路思鑫坊) 40호에 지부를 두어 재건작업에 심혈을 경주하였다. 그밖에 난징·광둥(廣東) 등지에 분산, 활동하게 하였다.
이들은 홍보물을 발행했으며 이 당의 재정은 장쑤성(江蘇省) 정부주석인 천궈후(陳果夫)와 저장성(浙江省) 성당부위원 나샤톈(羅霞天)이 원조였다. 이 당은 한국독립당의 동명인 것 같다. 그 뒤 1935년 12월 이후 이 당은 전장셴(鎭江縣)으로 이동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광복투쟁(光復鬪爭)의 선구자』 ( 이현희 ,동방도서,1990)

  • 『임정(臨政)과 이동녕연구(李東寧硏究)』 ( 이현희 ,일조각,1989)

  • 『독립유공자공훈록(獨立有功者功勳錄)』 5(국가보훈처,1988)

  • 『3·1독립운동(獨立運動)과 임시정부(臨時政府)의 법통성(法統性)』 ( 이현희 ,동방도서,1987)

  • 『대한민국임시정부사(大韓民國臨時政府史)』 ( 이현희 ,집문당,1982)

  • 독립운동사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3(국사편찬위원회,1967)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애국동지원호회,1956)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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