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진 출신. 만주 봉천성 유하현(奉天省柳河縣)에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9년 5적암살단인 27결사대(二七決死隊)에 가입하였다.
이탁(李鐸)·이우영(李宇榮)·차병제(車秉濟)·손창준(孫昌俊) 등 27명의 대원들과 입국, 같은 해 3월 3일 고종의 국장일에 참석하는 이완용(李完用) 등 5적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이탁이 권총을 준비하지 못하여 거사하지 못하였다.
그 해 3월 15일에 이탁으로부터 권총과 탄환을 지급받고 거사할 기회를 엿보던 중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손창준·차병제와 함께 무교동 박홍일(朴泓鎰)의 집에 가서 500원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경계가 삼엄하여 5적암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던 중 6월 5일 일본경찰에 붙잡혀 1920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4년 만에 옥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