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1989. 평안북도 정주 출신.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를 졸업하였다. 1946년 월남하여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에 입회하였고, 1948년유치진(柳致眞) 작·연출의 「은하수」에서 첫 무대를 가졌다.
영화계에 들어선 것은 1949년이규환(李圭煥) 감독의 「돌아온 어머니」에 출연하면서부터이며, 그 뒤 연극과 영화에서 성격배우로 크게 활약하였다. 1949년「범선 천우호(帆船 天佑號)」와 1952년「통곡(痛哭)」 등 신예술무대인 신극계열에 치중하다가 1955년김기영(金綺泳) 감독의 「죽음의 상자」를 계기로 영화계에서 전적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1957년 유현목(兪賢穆) 감독의「잃어버린 청춘」에서 크게 인정을 받아 그 당시 국산영화의 대부분에 출연할 만큼 바쁜 배우가 되었고, 생애에 700여 편에 이르는 영화에 출연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자유결혼」(1958)·「돈」(1958)·「인생 차압」(1958)·「오 내고향」(1959)·「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흙」(1960)·「어부들」(1961)·「혈맥」(1963)·「상속자」(1965)·「족보」(1978)·「심봤다」(1979)·「짝코」(1980) 등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이만희(李晩熙) 감독의 「싸리골의 신화」(1967)와 김수용(金洙容) 감독의 「물보라」(1980)가 있다.
주연보다는 조연에서 중후한 기량을 발휘한 그는 영화 「인생차압」으로 1958년 제1회 부일영화상 조연상을 수상하였고, 그 뒤 다수의 대종상과, 1963년「혈맥」으로 청룡상, 1967년「싸리골의 신화」로 제4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연기대상을 수상하였다.
1968년 이후 고혈압으로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1977년 유현목 감독의 「문」을 계기로 재기하였지만 건강 악화로 1981년부터는 연기생활이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