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추강(秋岡). 강원도 횡성 출신. 1917년 원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 진학 당시 3·1운동 만세시위에 참가하였으며 그뒤 신덕영(申德永)·노형규(盧衡奎) 등과 동지가 되어 전라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임시정부에 조달하는 등 활약하다가 1920년 11월 일본경찰에 붙잡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출옥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안창남(安昌男)·김정련(金正連) 등과 함께 대한독립군 공명단(共鳴團)을 조직하고 단장에 피선되었다. 1927년에는 비행사 안창남·김정련 등과 함께 독립군 비행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비행학교(飛行學校) 설립을 계획하고 그에 필요한 기금모집과 공명단 지부를 서울에 설치할 목적으로 김정련·이선구(李善九)와 함께 1929년에 국내로 잠입하였다.
잠입 후 이들은 서울 교외 망우리(忘憂里) 근처에서 일제의 우편차를 습격하여 돈을 빼앗은 뒤 강원도 쪽으로 향하였으나 이를 추격한 일본경찰과 항전을 벌이다가 붙잡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서울형무소 서무과장, 인천형무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