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서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국학학유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68년(원종 9) 12월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국학학유
관련 사건
해도재천계획 누설 사건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국학학유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68년(원종 9) 8월 홍유서(洪惟敍)는 국학학유(國學學諭)로서 대장군(大將軍) 최동수(崔東秀)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몽고에 파견되었다. 그당시 무신집권자 김준(金俊)이 몽고의 친조(親朝) 요구에 반대하여 해도(海島)로 다시 천도(遷都)하려는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하였다. 홍유서는 이러한 김준의 해도재천(海島再遷) 계획을 부몽배(附蒙輩) 김유(金裕)에게 누설하였다. 같은 해 11월 17일(甲子) 몽고 사신 병부시랑(兵部侍郞) 쾌디[黑的], 예부시랑(禮部侍郞) 은홍(殷弘) 등과 함께 귀국한 신백천(申百川)이 이러한 사실을 김준에게 고하자, 김준은 다음 달 홍유서를 제거하였다.

홍유서의 해도재천 고변은 출륙환도(出陸還都) 문제를 놓고 몽고와 고려 사이에 첨예한 갈등을 배태시켰으며, 종국적으로는 몽고세력에 의지하여 왕권을 회복하려는 원종에 의해 김준정권의 붕괴를 가져왔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임연·임연정권 연구』(신호철 외, 충북대학교 출판부, 1997)
「원종대의 권력구조와 정국의 변화」(강성원, 『역사와 현실』17, 1995)
「삼별초의 봉기와 남천에 관하여」(윤용혁, 『이기백선생고희기념 한국사학논총』상: 고대편·고려시대편, 일조각, 1994)
「고려무인정권 말기의 대몽정책」(장세원, 『군산실업전문대 논문집』7,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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