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군정서(間島軍政署)
군비로는 장총 1,300정, 권총 150정, 기관총 및 수류탄 80개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1920년 3월과 6월에는 총재 서일의 격려에 고무되어 무장투쟁을 전개한 결과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그 근처에 무관학교를 설치하여 15세 이상 40세까지의 청장년을 징모하고 간부를 양성하였다. 특히, 국내에까지도 조사원 · 파견원 · 특파원을 보내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청년들을 설득하여 국내를 탈출, 이에 동참하게 하였다. 그 결과 50여명의 청년이 간도군정서에 가담하였고, 군세(軍勢)는 한때 3,000명선까지 이르렀다. - 『한국민족광복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87) - 『한국독립운동사』 2∼5(국사편찬위원회, 1966∼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