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찬(閔泳瓚)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국보(國寶)로, 민치구(閔致久)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민겸호(閔謙鎬)의 아들이며, 민영환(閔泳煥)의 동생이다. 1889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시강원 설서(說書)로 임용되어 1891년 홍문관 전한에 올랐다. 시강원 문학(文學)을 거쳐 1891년 7월 성균관 대사성이 되고, 1895년 명성황후의 주선으로 미국 유학길에 나섰으나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살해되자 귀국하였다. 1896년 학부 협판으로 임명되어 한성은행 발기인, 육군 부령, 중추관 의원, 법부 협판, 고등재판소 판사, 프랑스 파리 만국박물회 한성본국박물사무 부원, 궁내부 협판, 사립 흥화학교 사무위원, 궁내부 특진관, 의정부 참찬, 학부 협판, 특명전권공사, 학부 서무대신사무, 주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