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가야금산조는 무속음악의 시나위처럼 허튼가락에서 출발하여 판소리 등의 영향으로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와 같이 느린 속도의 곡에서 빠른 속도의 곡으로 진행하는 틀이 19세기 말에 짜져서 오늘에 이른다.
김창조(金昌祖)가 그 효시라고 일컬어지나 그 당시에 한숙구(韓淑求) · 박팔괘(朴八卦) · 박창옥(朴昌玉) · 심창래(沈昌來) · 이차수(李且守) 등도 가야금 명인의 반열에 있었다. 장단과 음조직 · 선율 · 농현 · 장식음의 처리와 조합은 연주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져 여러 가지 계열을 창출하게 되었는 바, 강태홍류도 그 중 하나이다.
강태홍(1894∼1957)은 전라남도 무안 출생으로, 19세에 대구로 이주한 이후 경상도에서 주로 살았으며, 1945∼1957년간은 부산에서 활동하였다. 유년기부터 가야금을 타기 시작하여 20세에 명성을 얻었고 30대 초에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를 완성하였다고 전한다.
원옥화(元玉花) · 김춘지(金春枝) 등 7 · 8명의 제자 가운데 4명의 부산 출신 중 유일한 생존자인 신명숙(申明淑)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