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복모(角福牟)라고도 하며, 음양오행설에 능하였다. 당시 관등은 달솔(達率)이었다. 백제가 멸망한 뒤인 663년 백제부흥군이 왜군과 연합하여 당군과 싸웠으나 백강(白江)싸움에서 대패함으로써 부흥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이때 좌평 여자신(余自信), 달솔 목소귀자(木素貴子) · 곡나진수(谷那晋首) · 억례복류(憶禮福留) 등 많은 귀족과 유민들이 왜군의 함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는데, 이들과 함께 간 듯하다. 671년 백제의 도래귀족들에게 관작이 주어질 때, 음양에 익숙하여 소산하(小山下)의 관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