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때 강원도 양양낙산사의 노비였다. 몽고의 침입 때 당시 낙산사에 보관 중이던 관음 및 정취(正趣) 보살의 진용(眞容)과 두 개의 보주(寶珠)를 아행(阿行)이 양주성(襄州城: 지금의 강원도 양양) 함락 때 보존하였는데, 걸승이 그것을 땅 속에 묻어 보관하였다.
몽고군이 물러간 뒤 보주를 파내어 패주도감창사(浿州道監倉使) 이녹수(李祿綏)에게 주어, 그것을 감창고(監倉庫)에 보관하게 하였다. 1258년 기림사(祇林寺)의 각유(覺猷)가 어부(御府)로 옮기기를 청하여 나라에서 야벌초 10인을 파견하니, 이들을 안내하여 명주성(溟州城)에서 이를 가져다 내부(內府)에 보관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