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승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양양 낙산사의 노비.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자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양양 낙산사의 노비.
생애 및 활동사항

고종 때 강원도 양양낙산사의 노비였다. 몽고의 침입 때 당시 낙산사에 보관 중이던 관음 및 정취(正趣) 보살의 진용(眞容)과 두 개의 보주(寶珠)를 아행(阿行)이 양주성(襄州城: 지금의 강원도 양양) 함락 때 보존하였는데, 걸승이 그것을 땅 속에 묻어 보관하였다.

몽고군이 물러간 뒤 보주를 파내어 패주도감창사(浿州道監倉使) 이녹수(李祿綏)에게 주어, 그것을 감창고(監倉庫)에 보관하게 하였다. 1258년 기림사(祇林寺)의 각유(覺猷)가 어부(御府)로 옮기기를 청하여 나라에서 야벌초 10인을 파견하니, 이들을 안내하여 명주성(溟州城)에서 이를 가져다 내부(內府)에 보관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집필자
주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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