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종 때 이자연(李子淵)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윤주(潤州)에 있는 감로사의 빼어난 경치에 감탄하여 귀국 후 그와 같은 장소를 6년 동안 물색하여 이 절을 창건한 뒤 ‘윤주감로사’라 하였다.
그 뒤 계속해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는데, 이자연의 맏딸인 인예왕후(仁睿王后)는 이 절에서 기도하여 순종·선종·헌종·숙종을 낳았고, 인종의 비인 공예왕후(恭睿王后)는 절을 중창하여 원찰로 삼고 기도하여 의종·명종·신종을 낳았다.
특히, 이 절에는 이름 있는 고승과 선비들이 많이 찾았는데, 시승(詩僧) 혜소(惠素)와 김부식(金富軾)은 이 곳에서 서로 화답하면서 1,000여 편의 시를 지었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의 빼어난 경치를 보고 지은 이규보(李奎報)·김부식·이색(李穡)·권근(權近)·정이오(鄭以吾)·성임(成任)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에는 권근이 이 절에 머물다가 당우들이 퇴락된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겨 공장(工匠)을 청하여 중창하였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고려 때 개성에는 성의 안팎에 두 개의 감로사가 있었는데, 이 절은 성밖에 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