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산군은 양강도 중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양강도 운흥군 및 함경남도 단천시, 서쪽은 양강도 삼수군, 남쪽은 양강도 풍서군 및 함경남도 허천군, 북쪽은 양강도 혜산시 및 운흥군과 면해 있다. 북한 전체로 보면 거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갑산군의 평균 해발은 800~1,200m 이상이다. 동 생산지로 유명하며, 주요 산업은 광업과 임업, 경공업이다. 면적은 1,075.6㎢로 도 전체의 7.74%이고, 인구는 2008년 기준 7만 611명이다. 행정구역은 1읍 4노동자구 20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갑산읍이다.
개마고원의 동쪽 지역에 위치한 고원지대이다. 남동이 높고 북서로 가며 점차 낮아지며 동쪽으로 치우친 경동지형(傾動地形)이다. 갑산군의 평균 해발은 1,240m로, 대부분 해발 800~1,200m 이상이다. 군의 중심 지역은 해발 800m 정도의 분지 지형이다. 갑산군 둘레로 동쪽에 활기봉, 샘골산[1,874m], 칠반산[1,908m], 남쪽에 백세봉[1,911m], 우두봉[1,403m], 서쪽에 혜문산[1,584m] 등 높은 산들이 있다. 군내에서 가장 높은 곳은 동점령산(銅店嶺山: 2,113m)이고, 가장 낮은 곳은 조양리의 허천강 바닥[765m]이다.
중심 지역에서 북쪽으로 허천강이 흐르고, 진동천, 양흥천, 송암천, 남평천, 큰골물 등을 비롯한 24개의 지류와 합류하여 압록강에 유입된다. 허천강과 그 지류 연안에는 상대적으로 넓은 벌들이 있으며, 하천 양안에는 소규모의 하안단구가 발달해 있다. 산림은 군 전체 면적의 85% 정도이다. 허천강과 24개의 지류는 주로 공업용수나 수력발전, 관개 등에 이용된다.
시생대 퇴적변성암류와 화강암류, 하부원생대와 상부원생대의 퇴적변성암류, 관입암류, 중생대의 퇴적암과 분출암, 관입암, 신생대의 분출암 등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광물로는 동을 비롯한 유색금속[비철금속]과 석탄이 묻혀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는 표백화갈색 토양이, 현무암덕에는 표백성토양이, 허천강과 그 지류들의 연안에는 충적지 토양과 논토양이 발달되어 있다.
주요 수종은 이깔나무, 소나무, 신갈나무, 싸리나무가 있고, 산에는 단너삼, 당귀, 오미자, 삽주와 같은 약초들과 도라지, 버섯, 고사리 등의 산나물, 돌배, 머루 등의 산과일들이 있다.
2004년 자료에 따르면, 갑산군의 최대 강수량은 1966년의 834.6㎜, 최소 강수량은 1924년의 345.1㎜였다. 연평균 일조율은 56%, 연평균 강수량은 555.7㎜로 양강도 내에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지역이다. 연평균 기온은 2.8℃, 7월 평균기온은 20℃, 1월 평균기온은 -17.9℃이다. 한국 기상청에 따르면, 갑산군 북쪽에 인접한 혜산시 관측 결과, 1980년2023년 기준 연평균 기온은 최고 5.3℃[2023년], 최저 2.9℃[1984년], 연 강수량은 최대 강수량 899.4㎜[2007년], 최소 강수량 344.7㎜[2002년]이다. 2012년2024년 6월까지 관측 결과 혜산시의 최고 기온은 38.3℃[2016. 8. 5.]이고, 최저 기온은 -33.9℃[2018. 1. 26.]이다. 한국 기상청에서는 북한의 기후 관측을 27개 지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27개 지점에 갑산군은 포함되지 않아, 인접한 지역인 혜산시 수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갑산’이라는 지명은 1413년(태종 13)에 이 지역에 있었던 갑주만호부의 명칭을 갑산군으로 바꾸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1461년(세조 7)에 갑산도호부(甲山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895년에는 갑산부가 되었다. 1896년에는 함경남도 갑산군이 되었으며, 10면이 속하였다. 1914년 군의 일부가 풍산군과 혜산군으로 분리되면서 5면을 관할하였다.
‘갑(甲)’은 처음 또는 첫째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척된 곳이라는 뜻에서 ‘갑산’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 민간에서는 갑옷처럼 평평한 산이 많은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며, 산골 중의 산골이라는 의미도 있다.
1929년에 당시 함경남도 갑산군 보혜면 대평리 펑퍼물에서 화전민들이 일제에 항거하여 농민 항쟁을 일으킨 바 있다. 1929년 4월부터 일제가 산림 보호 명목으로 화전민을 추방하고 가옥을 불태우자, 500여 명의 화전민이 경찰서에 몰려가 항의하고 함경남도청과 조선총독부에 대표를 파견해 진정하였다. 이러한 항거에 대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언론에서 보도하였고, 신간회에서도 진상보고대회를 개최하여 화전민 항쟁을 지원하였다. 그 결과 화전민들은 일제로부터 1929년도 수확을 보장받고 백채동(白菜洞)으로의 이주를 약속받았다. 갑산 화전민 항쟁은 사회 각계각층이 연대를 형성하여 항일 민족운동의 계급적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다.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1930년대 중반 갑산 지역에서 조국광복회 활동을 했던 박금철, 이효순 등의 인물들을 ‘ 갑산파’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갑산파의 핵심 일원으로 활동한 이송운, 김왈룡, 허학송 등은 박금철의 지휘 아래 당시 함경남도 보천면에서 있었던 보천보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갑산파는 1950년대에 김일성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부상하였지만, 1967년에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1952년 갑산면, 회린면, 동인면, 진동면과 산남면 일부를 합쳐 갑산군을 구성하였다. 이때 갑산면의 용림리, 몽충리, 남부리 등을 합쳐 갑산읍으로 개편하고, 1읍 29리를 관할하였다. 1954년 10월 동포리와 석동리를 병합하여 동점노동자구를 신설하는 등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이때 함경남북도의 일부와 평안도의 후창군 일부가 통합돼 현재의 양강도가 신설되었고, 갑산군의 소속이 함경남도에서 양강도로 바뀌었다.
진북루(鎭北樓), 갑산읍성(甲山邑城), 장평산성을 비롯한 유적과 천연기념물인 갑산비슬나무가 있다.
진북루는 국보유적 제157호이다. 양강도 갑산군 갑산읍에 있으며, 조선시대 갑산읍성의 정남문이다. 갑산읍성은 준국보급[보존급] 제518호이고, 석성이다. 북쪽 방위 강화를 위해 1448년에 쌓았고, 조선 말까지 동북방의 중요 읍성 중 하나였다. 갑산읍성에는 진북루 외에 북승루, 양상정, 합구정 등의 성문이 있었으나, 진북루가 가장 웅장하였다. 북방 개척이 한창이던 1437년(세종 19)에 중수된 기록이 있으며, 한국전쟁 시기 폭격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80년대에 원상 복구하였다.
장평산성은 준국보급[보존급] 제517호로, 갑산읍 장평산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산봉우리로부터 남쪽 능선으로 내려오면서 돌로 쌓았는데, 둘레는 2,600척이다. 1390년에 처음 쌓은 성으로 전해진다.
갑산비슬나무는 1980년 1월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되었다. 양강도 갑산군 송암리 송암중학교 운동장 옆에 있다. 1610년경부터 자라왔다고 보고 있으며, 북한 비슬나무 가운데 크기가 크고 모양이 웅장하다.
2005년 기준 대학은 갑산공업대학 1개교, 전문학교는 갑산농업전문학교, 갑산광업전문학교를 비롯한 3개교가 있다. 그 밖에 오일중학교, 사평중학교, 조양중학교 등 27개의 중학교와 24개의 소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 오일문화회관을 비롯한 25개의 문화회관이 있다. 보건기관으로는 갑산군인민병원, 동점광산병원, 오일병원 등 6개의 병원과 20여 개의 진료소가 설치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광업, 임업, 농업, 경공업 등이다. 북한의 주요 동 광산인 갑산광산이 이 지역에 있으며, 송암리, 양흥리, 동점노동자구, 추풍리 등은 주요 통나무 생산지이다. 식료품공업과 수지일용품, 목재일용품, 철제일용품도 생산된다.
갑산군은 양강도의 주요 농산지 중 하나이다. 농경지 면적은 갑산군 전체의 7% 정도인데, 이는 양강도 전체 농경지 면적의 10%가량에 해당한다. 농경지의 70% 정도는 해발 1,000m 이하의 허천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다. 논 면적은 적지만 양강도 전체 논 면적의 약 20%에 해당한다. 주된 농경지는 밭이고, 특히 감자는 갑산군 파종 면적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양강도에서는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자 맥주를 만드는 데 쓰이는 홉이 매우 많이 생산된다. 양강도 전체 홉 생산량의 32%가량을 차지한다. 오일노동자구에는 홉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국영농장이 있다. 양봉업도 발달하여 양강도 전체 꿀 생산량의 약 23%를 차지하며, ‘갑산꿀’로 유명하다.
주요 농장으로는 문락평농장, 오일농장, 금풍농장, 남평농장, 대중농장, 임동농장, 사동농장, 사장농장, 사평농장, 삼봉농장, 상흥농장, 송암농장, 신정농장, 양흥농장, 조양농장, 중천농장, 창동농장, 창송농장, 추풍농장, 평화농장, 회린농장이 있다.
갑산군에서 2010년 이후 2023년까지 기업 활동이 보도된 기업소와 공장은 약 12개이다. 화학제약 부문은 갑산화학공장, 갑산군고려약공장, 갑산제약공장 등이 확인된다. 종이건재 부문은 갑산종이공장, 갑산군기와공장이 있다. 광업 부문은 오일광산, 갑산광산, 8월광산이 있다. 음식료품공업 부문은 오일건강음료종합공장, 갑산식료공장이 있다. 섬유의류 부문은 갑산피복공장이 있고, 그 밖에 갑산군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이 확인된다.
최근의 활동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2005년 자료에 따르면, 동점노동자구에는 갑산탐사대, 동점식료공장, 동점피복공장, 동점종이공장이 있다. 삼일노동자구에는 삼일광산, 삼일닭공장, 삼일토기협동조합이 있다. 또한 갑산임산사업소가 있고, 그 밖에 갑산군의 각 리에 금풍소형발전소, 사장탄광, 사장소석회공장, 사평양어장, 양흥탄광, 창송사업소 등이 있다.
교통은 북청혜산 간 1급도로가 통과하고, 갑산동점 간, 오일~운흥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갑산읍과 갑산군 내 여러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 양강도 소재지인 혜산시까지는 약 55㎞이다.
행정구역은 1954년 이래 현재까지 1읍 4노동자구 20리로 구성되어 있다.
군의 중앙, 허천강과 그 지류인 진동천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다. 동쪽은 평화리, 서쪽은 삼봉리, 남쪽은 사평리 · 남평리, 북쪽은 상흥리 · 창송리와 인접해 있다. 갑산군의 정치 · 경제 · 문화적 중심지로, 농업전문학교와 학교, 도서관, 병원, 경기장 등이 집중되어 있다. 갑산식료공장이 있다. 북청혜산 간 도로가 통과하고, 갑산동점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갑산읍과 군내 여러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 조선시대 석성인 갑산읍성이 있다. 1914년 장평면에 속했다가 나중에 갑산면이 되었다. 1952년 용림리 · 동부리 · 몽충리 · 서부리 · 남부리 · 북부리를 병합하여 신설되었다.
군의 남동쪽에 위치한 노동자구이다. 동쪽에 동점령산[2,113m]이 있고, 노동자구의 중앙으로 진동천이 흐른다. 1954년에 갑산군 석동리와 동포리를 병합해 신설하였다. ‘동점’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동광산이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갑산공업대학과 갑산광업전문학교가 있다. 교통은 갑산군 내 여러 지역과 함경남도 단천시, 허천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이밖에 동점~금골 간에 삭도가 설치되어 있다.
군의 북서쪽에 위치한 노동자구이다. 북서쪽에 백조봉[1,764m]이 있다. 노동자구의 중심으로 허천강의 지류인 큰골물이 흐른다. 1949년 회린면의 중포항리 일부와 동인면의 어연리 · 류정리를 병합하여 동인면에 삼일리가 신설되었고, 1977년 노동자구로 승격하였다. ‘삼일’이라는 지명은 세 개의 리를 병합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 지역은 고지대 농업이 발전하였는데, 큰골물 서쪽 연안에는 농장마을이, 동쪽 연안에는 광산마을이 길게 형성되어 있다. 농산물로는 주로 홉을 재배하며, 옥수수, 감자 등도 생산된다. 축산업에서는 전문 닭공장이 설치되어 있다. 교통은 북청과 혜산을 연결하는 1급 도로가 지나간다.
군의 동쪽에 있는 노동자구이다. 단천남대천 유역에 있다. 동광산이 개발되면서 취락이 형성되었다. 1988년 동점노동자구에서 분리되어 생겼다. 1896년 갑산군 천남면 문락평이었으며, 1914년에 풍산군 소속이 되었다가 광복 직후 폐지되었다. 1988년 노동자구로 신설되면서 복귀된 지명이다. ‘문락’이라는 지명은 귀양살이하던 문인들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이 지역은 조선 때부터 사람이 살기 힘든 고장으로 정평이 나 있어 유배지였다. 동점~금골 간 삭도가 건설되면서 광산 채굴업이 활기를 띠었으며, 주민지 건설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군의 북쪽에 자리한 노동자구이다. 동쪽은 금풍리, 서쪽은 조양리, 남쪽은 대중리 · 회린리 · 중천리, 북쪽은 신정리 · 혜산시 · 장안리와 접해 있다. 북쪽에 안간령[1,138m]이 있고, 허천강의 지류인 큰골물의 하류 연안에 위치한다. 유색금속 광물이 채굴되면서 광산 취락이 형성되었다. 1949년 갑산군 동인면의 창평리 · 영동리에 소속된 5개 마을을 합쳐서 오일리를 신설하였다. 1952년 갑산군에 속하였다. 1973년 운흥군에 속하면서 오일노동자구가 되었다가 1981년 갑산군에 속하였다. 지명은 동인면의 ‘다섯’ 마을이 합쳐서 ‘하나’의 리가 되었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북청혜산 간 1급도로가 통과하며, 오일운흥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군의 북쪽에 있는 리이다. 동쪽은 운흥군 상산리, 서쪽은 신정리와 삼일노동자구, 남쪽은 송암리, 북쪽은 오일노동자구, 북동쪽은 운흥군 신중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동인면의 신개리 · 연풍리 · 상후리를 합쳐 금풍리가 되었다. 금풍은 도내에서 기후가 비교적 따뜻한 내륙분지 지역으로, 매해 풍년이 들어 황금빛 들판이 펼쳐진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해발 8001,0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하며, 주변이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룬다. 북동부의 두릉봉[1,368m], 복개봉[1,573m], 남서부의 운영산[1,635m] 등이 대표적인 산이다. 하천은 허천강 2지류인 작은골물이 관류한다. 옥수수, 감자 등이 재배되고, 양봉업이 성행한다. 교통은 작은골물 기슭을 따라 북청혜산 간 1급도로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고, 군 소재지인 갑산읍까지는 30㎞이다.
군의 남서쪽에 위치한 리이다. 1952년에 갑산면의 동흥리(東興里) · 통남리(通南里) · 중평리(仲坪里)와 장남리(長南里) 일부를 합쳐 남평리가 되었다. 남평은 통남리와 중평리를 합성한 지명이다. 남평리에서 생산되는 꿀은 명산물로 유명하다.
군의 북서쪽에 자리한 리이다. 동쪽과 남쪽은 송암리, 서쪽은 회린리, 북쪽과 북서쪽은 삼일노동자구, 북동쪽은 금풍리와 접해 있다. 산림이 리 전체 면적의 약 95%를 차지한다. 1952년에 회린면의 대풍리 · 중흥상리 · 중흥하리를 병합해 대중리가 되었다. 대중은 대풍리의 ‘대’ 자와 중흥상리 · 중흥하리의 ‘중’ 자를 합친 지명이다.
군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동쪽은 조양리, 서쪽은 삼수군 원동리 · 반룡기리, 남쪽은 천성리, 북쪽은 삼수군 번포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회린면의 조양리 · 장기리 · 중초리 · 남동리를 병합하여 사동리가 되었다. ‘사동’은 지역 내에 모래가 많은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교통은 조양리, 중천리 등 군내 여러 지역과 혜산시, 삼수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인 갑산읍까지는 남동쪽으로 약 20㎞이다.
군의 동쪽에 위치한 리이다. 동쪽과 남쪽은 동점노동자구, 서쪽은 창동리, 북쪽은 운흥군 용암노동자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진동면의 상리(上里) · 은사리(隱士里) · 중장리(中庄里)를 병합해 사장리가 되었다. ‘사장’은 은사리와 중장리를 합친 지명이다.
군의 서남쪽에 위치한 리이다. 1952년에 산남면의 송우리와 용평리 일부, 갑산면의 장남리 일부를 병합하여 사평리가 되었다. ‘사평’이라는 지명은 마을 중앙에 있는 모래벌에서 유래하였다.
군의 서남쪽에 자리한 리이다. 동쪽은 갑산읍 · 사평리 · 임동리, 서쪽은 삼수군 천남리, 남쪽은 풍서군 우포리와 회은리, 북쪽은 상흥리 · 중천리 · 천성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산남면의 고소리와 신봉리 일부를 합쳐 삼봉리가 되었다. ‘삼봉’은 마을에 위치한 세 개의 큰 봉우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군의 서쪽에 위치한 리이다. 북쪽은 회린리, 서쪽은 중천리, 남쪽은 삼봉리와 갑산읍, 동쪽은 송암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갑산면의 사기리 · 부흥리와 회린면의 용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흥리가 되었다. ‘상흥’은 1949년에 용계리에 편입된 우상리와 부흥리를 합성한 지명이다.
군의 서쪽에 있는 리이다. 동쪽은 금풍리, 서쪽은 상흥리, 남쪽은 창송리와 양흥리, 북쪽은 대중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갑산면의 도상리 · 도하리 · 고암리 · 대흥리와 회린면의 용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암리가 되었다. ‘송암’은 1949년에 용계리에 편입된 송계리와 고암리를 합성한 지명이다.
군의 북쪽에 자리한 리이다. 동쪽은 금풍리, 서쪽과 북쪽은 오일노동자구, 남쪽은 삼일노동자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동인면의 사정리 · 연흥리 · 신풍리를 병합하여 신정리가 되었다. 신정은 신풍리와 사정리를 합성한 지명이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리이다. 동쪽은 사장리, 서쪽은 평화리, 남쪽은 창동리, 북쪽은 창송리 · 송암리, 북동쪽은 운흥군 용암노동자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진동면의 연흥리 · 신양리 · 노적리를 병합하여 양흥리가 되었다. 양흥은 신양리와 연흥리를 합성한 지명이다.
군의 서남쪽에 위치한다. 동쪽은 남평리, 서쪽은 풍서군 우포리, 남쪽은 풍서군 내포리, 북쪽은 사평리, 북쪽은 삼봉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산남면의 가림리와 동천리를 병합하여 임동리가 되었다. ‘임동’은 가림리의 중간 글자와 동천리의 첫 글자를 합성한 지명이다.
군의 서북쪽에 위치한 리이다. 1952년에 회린면의 장중리 · 서당리 · 위계리를 병합하여 금화리가 되었다. ‘금화’는 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김락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82년에 조양리로 개칭되었는데, ‘조양’은 아침에 해가 잘 든다는 뜻을 가진 조양나루터에서 유래하였다.
군의 서북쪽에 위치한 리이다. 동쪽은 회린리 · 상흥리, 서쪽은 천성리, 남쪽은 삼봉리, 북쪽은 삼일노동자구 · 조양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회린면의 후지리 · 진둔리 · 신흥리를 병합하여 중천리가 되었다. 중천은 이곳의 중심 지역에 허천강이 흐르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군의 동쪽에 위치한 리이다. 동쪽은 사장리와 동점노동자구, 서쪽은 평화리, 북쪽은 양흥리, 남쪽은 추풍리 · 함경남도 허천군 신평리와 접해 있다. 1952년에 진동면 창평리 · 신동리 · 양유리 · 남양리를 합쳐 창동리가 되었다. 창동은 창평리와 신동리를 합성한 지명이다.
군 중앙에 위치한 리이다. 1952년에 갑산면의 세동리와 선평리를 합쳐 창송리가 되었다. ‘창송’은 울창한 푸른 소나무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군의 서북쪽에 자리한 리이다. 1949년에 회린면의 천수리와 이태리를 병합하여 새로 생겼다. ‘천성’은 샘이 솟는 곳이 많아서 유래한 지명이다.
군의 남쪽에 위치한 리이다. 1952년에 갑산면의 쌍대리 · 쌍소리 · 부연리를 병합하여 군의 남쪽에 신설되었다. ‘추풍’은 가을이면 풍년이 드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리이다. 1952년에 갑산면의 지경리와 진동면의 석우리 · 노평리 · 신성리를 병합해 평화리라고 하였다. 평화롭게 사는 마을에서 ‘평화’라는 지명이 비롯되었다.
군의 서북쪽에 있는 리이다. 1952년에 산남면의 석우리 일부와 회린면의 신화리 · 포항리를 병합하여 회린리가 되었다. ‘회린’은 물고기가 많은 고장이라는 의미를 가진 회린면에서 비롯된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