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쇄신은 1970년대에 공무원사회의 부조리를 일소하여 건전한 국민정신을 진작시키려던 정신개혁운동이다. 정부는 1975년 서정쇄신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사회전반에 걸친 부조리와 비능률을 제거하는 정신개혁운동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서정쇄신은 궁극적으로 국력배양을 통해 민족중흥을 꾀하려는 목적을 가진 운동으로 3대 행동과제, 즉 공무원사회정화·일반사회정화·정신혁명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고압적·하향적인 방식, 공직자들의 피동적·형식적 대응, 부조리의 음성화, 평형을 잃은 처벌 등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서정쇄신이라는 뜻은 원래 국정전반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서정쇄신이라는 말이 1970년대 이후 우리 나라 행정개혁사에서 특정한 개혁운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1975년부터 서정쇄신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규정한 바에 따르면 ‘서정쇄신은 공무원사회의 모든 부조리를 일소하여 능률적이고 명랑한 봉사행정을 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 국정능률을 극대화하고 동시에 이를 사회전반에 걸친 부조리와 비능률을 제거하는 사회정화운동과 새로운 가치관에 바탕을 둔 건전한 국민정신을 진작시키는 정신개혁운동으로 승화시켜 부유한 나라를 만드는 민족중흥의 과업’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서정쇄신은 궁극적으로 국력배양을 통해 민족중흥을 꾀하려는 목적을 가진 운동이었으며, 공무원사회정화 · 일반사회정화 및 정신혁명이라는 3대 행동과제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서정쇄신운동을 3단계의 과정을 통하여 추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추진과정의 3단계란, 첫째 관료사회의 비위 · 부정척결, 둘째 사회정화를 위한 일반에의 확대, 셋째 정화된 사회분위기가 국민의 의식 속에 체질화되는 것 등을 말한다. 서정쇄신은 당초에 대통령에 의하여 구상되고 하향적(下向的)으로 추진되었는데 서정쇄신이라는 일대개혁운동이 필요한 이유로 정부가 표방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무원의 기강확립을 위해서 필요하다. 둘째, 국정의 능률화를 위해서 필요하다. 국정을 능률화하려면 서정쇄신을 통하여 국정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근무자세를 바로잡아 모든 비능률요소를 말끔히 제거하고 무사안일주의를 스스로 배격하여야 한다.
셋째, 국가안보를 위해서 필요하다. 국가안보태세를 튼튼히 다지기 위해서는 총력안보태세의 기반이 되는 국민총화체제가 이룩되어야 하고, 국민총화체제는 정부와 국민의 일체감이 조성되고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 일체감은 공무원사회의 부조리가 말끔히 없어지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행정체제를 확립하여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게 될 때 이룩되는 것이다.
넷째, 건전한 국민정신의 진작을 위해서 필요하다. 물질위주의 경제성장과 급속한 개발정책수행과정에서 배금(拜金) · 이기 · 퇴폐풍조 등의 반사회적 가치관이 형성되어 국민정신이 해이해졌으며, 이것은 국민총화를 해칠 뿐 아니라 조국근대화과업의 성취를 가로막는 저해요인으로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건전하고 건설적인 국민정신을 진작하여 국력배양을 가속화시키는 조국근대화과업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서정쇄신운동을 정신개혁운동으로 승화시켜나갈 때 절대로 부정과 비위를 저지르지 않고 떳떳하게 살겠다는 국민정신은 스스로 진작될 것이다.
다섯째, 부조리 없는 깨끗하고 명랑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여섯째, 민족중흥을 이룩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필요하다.
서정쇄신의 일차적인 대상은 공직이었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서정쇄신은 공무원사회의 부정 · 부패 등 부조리 및 국정의 능률화와 국력의 조직화를 저해하는 비능률 · 낭비 · 무사안일주의 등의 요인을 제거하여 관기(官紀)를 확립시키는 활동으로 풀이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기확립으로 달성하려는 이상적 행정은 법률의 규정과 입법정신에 따라 집행되는 공정한 행정, 국민을 위한 봉사행정, 능률적인 행정, 그리고 명랑하고 건전한 행정이라고 규정되었다.
서정쇄신은 공무원사회의 기강확립, 즉 좁은 의미의 서정쇄신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범위를 확대시켜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공무원사회에 있어서 서정쇄신의 실전적 목표는 세 가지로 구분되었다.
첫째, 공무원의 체질을 개선하여 업무수행에 관련된 일체의 부정과 부조리를 뿌리뽑는 것이다. 둘째, 비능률적이고 낭비적인 행정체제를 뜯어고쳐 구조적인 부조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셋째, 공사생활의 주변환경을 정화하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공무원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전목표에 비추어 쇄신작업의 대상을 ① 사람[公務員], ② 일[業務], ③ 제도, ④ 환경(공사생활의 주변환경)으로 나누고 각 분야에서의 쇄신과제를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첫째, 말썽 많고 부정을 저지르며 무능하고 무사안일에 흐르는 자를 몰아내고 성실하고 유능한 공무원을 보호함으로써 공무원사회의 체질개선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따라서, 공무원사회의 서정쇄신은 공무원 스스로가 부조리의 악습에 젖은 지금까지의 나쁜 습성을 떨쳐버리는 체질개선과 관기확립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공무원이 맡아서 처리하는 모든 업무의 집행은 낭비를 없애고 능률을 극대화시켜서 그 성과가 모든 국민에게 되돌아가게 해야 한다. 공무를 처리할 때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친절 · 공정 · 신속 · 정확에 두어야 하고 모든 법령은 행정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셋째, 부정 · 부패 · 비능률 등 일체의 부조리요인이 배제될 수 있도록 제도상의 보완과 개선조처를 해야 한다. 구체적인 예로, 예산의 편성과 배분의 경우,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내용의 과학화와 경비의 현실화를 이룩하여 변태경리 등 부조리의 개입을 방지하도록 하고 불요불급한 예산의 계상을 지양해야 한다.
또한, 행정수요의 구분, 업무의 배분 · 처리 및 보고 등을 합리적으로 하고 정부가 꼭 수행해야 할 일을 엄선해서 공정 · 신속 · 정확하게 국민편의 위주로 처리하도록 제도적인 장애요소와 미비점을 보완, 개선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상급기관의 하급기관에 대한 지시 · 통제 · 지원 · 조정기능이 획일성을 벗어나 능률화되도록 재조정되어야 한다.
넷째, 관서주변을 정화하고 공무원의 사생활을 정화해야 한다. 공무원이 맡은 일을 청렴 · 결백하고, 신속 ·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외부간섭과 청탁을 없애도록 직장주변을 정화해야 한다.
공무원은 가정생활을 포함한 사생활에 있어서도 생활주변을 정화해서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사회지도자로서의 모범을 보이고 공직자로서의 분수와 품위를 지켜나가야 한다.
공무원은 서정의 집행자이기 때문에 마땅히 서정쇄신에 앞장서서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관기를 확립해나가고, 국민을 선도할 처지에 있는 공무원들은 서정쇄신운동을 일반사회로 확산시켜 사회정화운동과 정신개혁운동으로 발전되도록 할 것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서정쇄신을 정착시켜 다시는 관기가 허물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공무원과 함께 모든 국민이 건전한 정신을 가지게 하고 사회전반의 부조리와 비능률도 동시에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라도 서정쇄신의 범위는 필연적으로 확대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공직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체제도 서정쇄신의 대상영역에 포괄시켰다. 사회전반에 걸쳐 서정쇄신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른바 사회부조리현상의 유형은 세 가지로 크게 구분하였다.
첫째, 반사회 · 반국가적인 유신저해행위(밀수 · 탈세 · 밀주조 · 대마초 · 마약 등의 제조 · 판매, 음란물제조와 반포, 퇴폐행위, 새마을 자재횡령 등 새마을운동 저해행위, 재산도피, 위장이민), 둘째, 서민생활 침해행위(조직 및 상습적인 경제폭력 등 폭력행위, 유해식품 및 의약품 제조행위, 노임착취, 국민경제 침해행위), 셋째, 국민총화 저해행위(낭비와 사치 등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생활, 모략 · 중상 · 무고 등 비생산적 생활태도, 도박, 방탕행위, 호사생활)를 말한다.
서정쇄신운동의 엄격한 출발시점을 확인하는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의 공식적인 출발시기를 1975년 3월로 잡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때에 정부의 최고관리층에 대한 대통령의 서정쇄신 행동지시가 구체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전달되었다. 서정쇄신의 행동폭이 현저히 달라진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정부에서 비위공무원을 대폭적으로 문책할 때에 이 시기 이후의 행동만을 문책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도 서정쇄신의 출발점을 확립하는 데 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책임 있는 홍보자료에서도 1975년 3월을 서정쇄신의 출발시기라고 밝힌 바 있다. 서정쇄신의 1차연도인 1975년에는 시책의 중점이 대민업무에 결부된 부패의 제거와 변태경리의 시정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시책을 추진할 때 여러 방면에 걸친 대책의 종합적 추구를 강조하고 제도개선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른바 대민법령(對民法令)의 개선은 제도개선 노력의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현저한 충격을 준 조처는 비위공무원의 적발과 처벌을 대폭 강화한 것이라 하겠다. 비위를 저지른 공무원뿐만 아니라 그 상급 감독자들까지 ‘계열연대책임제’에 의하여 처벌하였다.
계열연대책임제란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과 그 직계상급 감독자뿐만 아니라 차상급자 이상의 감독계통에 있는 자도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이다.
1976년에 이르러 서정쇄신의 관념적 체계가 정돈되고 서정쇄신활동의 대상영역도 전년에 비하여 훨씬 확대되었으며, 이른바 권력형 내지 치부형 사회부조리를 제거하는 문제에도 약간의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공무원의 잔존부조리척결을 내세워 공무원에 대한 대폭적인 숙정작업을 계속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무원들의 주변정화를 위하여 ‘공무원 주변정화를 위한 업무지침’을 정부 각 기관에 시달하여 그 실천을 촉구하였다. 서정쇄신에 관한 공무원교육도 강화하고 각급 기관장의 정신교육을 실시하였으며, 공무원의 가족(주로 배우자)에게까지 교육을 실시하였다.
정부의 역점시책에 관하여 공무원가족을 교육시키는 관행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교육강화와 더불어 신상필벌을 강조하고 많은 유공공무원을 포상하였다.
행정체제 내에서 부조리발생의 소지를 제거하기 위해 제도개선을 한다는 목적으로 법령정비와 ‘행정개선작업’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일반사회를 정화하기 위하여 대국민홍보활동을 강화하였으며, 사회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사회질서 저해사범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였다.
1977년과 1978년에도 1976년의 경우와 비슷한 개혁사업을 추진하였다. 서정쇄신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개혁대상영역이 점차 확대되었으며 잔존부조리 내지 역부조리를 제거하는 데 역점을 두기도 하였다.
1978년부터 서정쇄신의 충격적 조처들이 미친 효과는 감퇴되기 시작하였고 점차 정치적 불안정이 가중되면서 1979년에는 통치지도층의 서정쇄신에 대한 집중적 관심을 기대할 수 없었다.
1979년 말의 행정수반유고와 그에 따른 잠정적 혼란기에는 서정쇄신의 추진중추가 상실된 상태였으며, 곧이어 제5공화국이 출범됨에 따라 서정쇄신운동이라는 말은 들어가고 사회정화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서정쇄신의 궁극적인 효과는 가시적 · 객관적 평가가 어렵다. 다만, 당시의 정황이나 그 뒤의 상황변화로 대략적인 판단을 해볼 수는 있다.
먼저, 서정쇄신운동이 반부패운동으로서 정부관료제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라는 판단의 요인은, 첫째 행정수반의 결의가 확고히 표시되었고 그에 의한 사업지지가 비교적 강력하고 지속적이었다. 한국적 여건하에서 행정수반의 깊은 관심표명은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가졌다.
둘째, 개혁의 대상과 시정행동의 폭이 매우 넓었고 상당히 과격한 수단들이 동원되었다. 셋째, 반부패활동은 적어도 2∼3년간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서정쇄신의 목적에 비추어 그 성과가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고압적이고 하향적이었기 때문에 공직자들이 피동적 · 형식주의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소극적 · 처벌적 조처들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부조리를 음성화하고 이른바 역부조리현상이 나타나게도 하였다는 것, 처벌의 평형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권력형부조리로 알려진 비위를 시정하는 데는 무력하였다는 것 등이 서정쇄신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리고 정권의 도의적 정당성이 도전을 받고 있었으며 정치적 지도세력의 청렴성에 관하여 국민이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서정쇄신운동의 효과를 감소시킨 궁극적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