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원취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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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원취락
과원취락
인문지리
개념
과수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
정의
과수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
개설

과수의 경우 특유의 자연적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것이 과원 취락의 중요한 입지인자가 된다. 그 한계 지대에는 생리적으로 재배가 가능하여도 경제적 재배가 불가능한 곳이 있다. 자연적 조건에는 대지역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과 소지역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 있다.

특히, 자연적 조건에서의 적지 가운데 다른 토지 이용과의 경합 관계 및 사회·경제적 요인이 그 입지를 구체화한다. 상품화 비율이 높은 과수농업은 시장과 관련이 깊고, 그것이 개개의 과수농업 입지 배치의 인자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수송 내구력이 결핍된 과수는 시장 근처에 입지하는 경향이 있다.

연원 및 변천

대표적인 과원 취락은 1890년(고종 27)부터 1900년(광무 4) 사이에 길주·원산·서울 등지를 중심으로 외국인 선교사에 의하여 형성된 것과, 1900년(광무 4)부터 1910년(융희 4) 사이에 인천·황주·남포·대구·나주·포항·구포·소사(지금의 부천) 등 일본인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적 과원과 과원 취락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1900년대 이후 일본인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사과 산지로 알려진 대구 지방에는 1904년(광무 8) 일본인 가게야마[影山秀樹]에 의하여 당시 달성군 월배면에 과원을 조성한 것을 시작으로, 1905년(광무 9) 대구시 동인동에, 1912년 영천군 금호면에 일본인에 의하여 과원이 각각 조성되었다.

한국인 이영결(李永決)에 의하여 경상북도 경산시 안심면에 과원이 조성된 것은 대구에서 일본인에 의하여 최초로 과원이 조성된 해로부터 8년 뒤의 일이었다. 이것은 일본인의 전유물처럼 되어온 과원 경영 기술이 한국인에게 보급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과원 취락이 보편화되었다.

전라남도 나주 지방의 배 산지는 1904년(광무 8) 일본인에 의하여 금천면 촌곡리에 4,000평 규모의 과원이 설치되었고, 1908년(융희 2) 기존 과원과 인접한 곳에 일본인에 의한 새로운 과원이 조성되고 기업영농이 보급되면서 형성되었다. 1918년에는 한국인에게 경영 기술이 전승되고, 세지면 죽동리에 3,000평 규모의 과원을 조성함으로써 배 주산지의 지위를 굳힌 동시에, 종전의 자연발생적 취락과 별개로 과원 취락이 나주 지방에 확산되어 갔다.

감귤의 주산지인 제주도 서귀포에도 1910년(융희 4) 일본인에 의하여 서홍리의 북쪽 산록과 대답(大畓: 한논이라는 지명)의 산기슭에 개량 품종을 심음으로써 과원 농업과 과원 취락의 기원을 이룩하였다. 특히 제주도에서의 감귤 재배는 1968년에 들어와 지방 소득 사업에서 농어민 소득 증대 사업으로 전환된 것을 계기로, 어느 농업 부분보다도 높은 신장세를 보였다. 이와 더불어 슬레이트와 시멘트 등 근대적 건축 재료가 보급되자 빗물 저장이 가능해지면서 음료수에 따른 취락의 입지의 제약요소가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마을 밖으로 과원 취락이 확산되면서 과원 취락은 점진적으로 한라산 중산간지 대로까지 퍼져나갔다.

신흥 사과 산지로 각광을 받은 예산 지역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사과 산지인 대구에서 2차적으로 분화된 것이기에, 대구 지방보다 19년 뒤인 1923년에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 일대에 일본인이 처음으로 사과원을 개원함으로써 과원 취락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과원 경영은 일본인 데라오카[寺岡]에 의하여 예산군 예산읍 주교리에 과목을 심음으로써 비롯되는데,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과원을 형성한 것은 1924년 삽교읍에 거주하던 조경국에 의해서이다. 예산지방의 사과 주산지는 예산읍에서 주변의 삽교읍·오가면·신암면 등지로 이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예산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충주 지방도 오늘날 대표적 사과 산지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으나, 예산 지방과 마찬가지로 제2차적 분화의 공통점을 안고 있다. 1907년(융희 1)에 개량종 사과가 도입되었고 1912년에 일본인 나카가와[中川龍藏]가 교현동의 용운사(龍雲寺) 부근에 조생종 사과의 과원을 조성하면서 과원 취락이 형성되었다. 그 뒤 한국인에 대한 과원 보급은 1914년 송석균(宋錫均)이 교현과원(校峴果園)을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경기도 안성 지방에서는 1901년(광무 5)에 프랑스 신부가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한 이후 박숭병씨가 포도농원을 경영하면서부터 서운면 일대에서 과원 취락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포도재배지역이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등지로 확산됨에 따라 안성시는 물론 천안시 일대에 포도농원을 중심으로 과원 취락이 발달해 있다.

내용

과원 취락의 발달 과정은 초기에는 대지에 인접하여 있는 토지에 묘목을 재배하여 과원 입지가 촌내에 한정되고 부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그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촌내에서 촌외 경지로 확산되었다. 경작권이 외곽으로 격리된 과원은 이윤 추구를 목표로 철저한 개별 경영에 초점을 맞추었다.

과원 농가는 농가와 과원까지의 거리가 증가함에 따른 노동 시간 감소·체력 소모·운반비 부담 등의 불이익을 줄이기 위하여 과원 안에 입지하며, 특히 교통로에 인접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하여 과원 취락은 농가가 고립하여 분산된 산촌(散村)을 형성하고 있으며, 평지보다는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에서 주로 형성된다.

과원 취락의 농가 구조는 과원의 규모 및 발달 단계에 따라 개척형·토착형·기업형으로 구분된다. 개척형은 아직 수확을 바라볼 수 없는 유목(幼木) 단계에서 계절 거주나 일시적 휴식을 위한 가건물의 성격을 띠며, 방과 부엌으로 된 두 칸 구조를 이루고 있다.

토착형은 개척 단계에서 벗어나 경제적 기반이 확립되면서 세 칸 구조를 기본으로 생활 공간이 확대되고 방을 비롯한 가옥 내부의 공간이 많아진 형태이다. 즉, 두 칸 구조에 대청 또는 툇마루가 첨가되어 두 가구의 생활권을 공존시키거나 자녀를 포함한 전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이용된 것이다. 이는 과목이 성장하고 과원 경영이 전문화됨에 따라 지속적이며 장기적인 노동력 투하가 요구되고, 따라서 과원주 또는 관리인의 과원 상주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기업형은 쾌적한 생활 환경 조성에 역점을 두어 다실화 구조에 욕실·실내 화장실·응접실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토착형에서 종적 배치를 이루던 대청이 기업형에서는 횡적 배치를 이루었고, 응접실과 사랑방이 전면 양측으로 확장, 곡부(曲部)가 발달되어 일자형(一字形)의 농가 배치에서 ㄷ자형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과원 농업의 기업화에 따라서 창고·저장고·저수탱크 등이 농가 주변으로 분리되는 별동구조(別棟構造)를 보이고 있다.

과원농가는 그 규모에 따라 부업형·전업형·기업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 계층유형에 따라 경영 규모·생산 시설·생활 환경이 각각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순곡물 농업 지역보다도 기계 이용에 의한 과학 영농과 편익도가 높은 쾌적한 환경으로 구조 개선의 경향이 뚜렷하다. 그러므로 과원농가는 기술·소득·경영·시설 면에서 촌락 사회의 선진적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원 지역의 산촌은 철저한 개별 경영을 하고 있는 까닭에 경영 합리화에 이로움이 없지 않으나, 저장고·창고·저수탱크 등 필수 시설이 농가 주변에 설치되어야 하므로, 부대 시설을 구비하는 비용과 생활 기반 시설비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생활권의 고립과 방어상의 취약성 등 부정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 이에 산촌이 가지는 본질적 취약성을 보완하고 농촌 생활의 안정적 향상을 위하여 과원 지역의 취락 재편성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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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청(www.yesan.go.kr)
충주사과(www.cj-app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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